김집사 이야기

우리 풍산교회에
93세에 돌아가신 김제석 집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집사는
풍산 시장 싸전 마당에서 
쌀 팔러 온 사람의 쌀이나
콩 팔러 온 사람의 콩을 팔아주고 이를 얻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 갔습니다.
장마에 비가 와서 두세번 장이 못서면 양식도 걱정해야 했습니다.

어느 해 초겨울 해저물녘
김집사는 때 묻은 광목자루 하나가
멍석 끝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 걸음으로 주워드니 
그 자루가 보통자루가 아닌 꽤나 큰 돈 자루 임을 짐작 할 수 있었습니다.
김집사는 얼른 그 자루를 깔고 앉고는 
아무 일도 없는 양 했습니다.

눈치를 챈 황소 같이 덩치도 크고 힘 쎈 아내가
"거기 뭐가 들었는지 좀 보시더 아이고 영감도 좀 보시더“
하여도 김집사는 자기도 한번 열어보지 않은 자루를 깔고 앉은 채 
“쓸데없는 소리 당신은 먼저 집에 들어 가이소”
그 자루를 열어본다는 것이 가당찮은 줄을 아는 부인은 
“ 영감 고집은 암소 뿔 보다 쎄지” 하고 그래도 힐끔힐끔 뒤를 돌아다보며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둘 장꾼이 다 돌아간 빈 장터에 
흙 먼지를 일으키는 초겨울 바람이 점점 세어지는 데도 
김집사는 싸전멍석을 말지도 않고 망부석인양 그대로 앉아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앉았는데 헐래 벌떡 숨이 턱에 찬 농부 한사람이 달려와서 다급하게 
“아저씨! 아저씨! 여기 자루 하나 못 봤니껴”했습니다. 
“그 자루에 뭐가 들었니껴?”
“그 자루에요? 그 자루에요 오늘 황소 판 돈이 들었니더 그 돈 잃으면 우리 집은 굶어 죽니더”
“그러면 그자루가 무슨 자루요?”
“그냥 광목자루지요 때에 절은 광목자루요”
그제서야 김집사는 깔고 앉았던 돈 자루를 들어보이며 
“이게 맞소?”
“아이고 맞니더 아이고 맞니더”
“임자가 맞는거 같으니 가져가이소”
눈물을 글썽이며 절을 수십번이나 한 농부가 돌아가자 
그제서야 김집사는 옷에 먼지를 털고 멍석을 말아 집으로 갔습니다.

*후일 김집사의 아들은 광부로 독일에 가서 도시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방에 있는 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