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갈」이다 목마를 갈(渴)이다  
하지 지나서는 보재기 구름에도 비가 오더니  
처서 백로 지나고는 큰 댁 마님의 열두폭 치마같이  
넓은 구름에도 비 한 방울이 없다  
산이 마르고 들도 마르고  
강도 목이 말라 길게 빼어 가는데  
갈걷이 걱정하는 농심을 애 태우는 마른 바람  
갈갈갈 갈대숲을 흔드는 바람  
산등성에 억새꽃을 피우고 하얗게 바래라고  
어지러이 뒤 흔드는 바싹 마른 바람  
나그네의 목을 말리는 바람  
사랑 사랑 사랑을 노래하는 연인들의 사랑을 목마르게 하는 바람  
잠을 깬 영혼은 생수에 목마르게 하는 바람 

가을은 「갈」이다 
머물러 있지 못하고 떠나 가는 것이다  
무슨 배길 수 없는 그리움이 있어 가는가  
못견디게 정다운 이가 손짓해서 가는가  
넓은 세상 구석구석 구경하러 가는가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어 어디로든 가는가  
그 누가 부릅 뜬 눈으로 좇아내서 가는가  
한 시 바쁜 소식 받아 전하려고 가는가  
여태 여기 살았어도 참 살 곳은 따로 있어 가는가  
미련한 이 더 미련해지라고 가고 또 가는 가을 

이렇게 밤이 점점 깊어짐은 
홀로 밤을 새우며 제 목마름을 깨우치리라 하심인 것을 이렇게 점점 가을이 더 깊어짐은 
가되 무작정 가지 말고 
진정 갈 곳을 찾아가라 하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