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전교조여! 영원한 청춘의 이름이여!! 
나와 전교조, 그리고 단상들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던 이름인가!! 전교조의 역사는 그대로 한국 교육운동사며 한국 현대사이기도 하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났다. 내가 속해있던 KSCM(한국기독학생연맹)을 지도하던 김대성 선생님을 비롯하여 김헌택, 차영민, 김명희, 조영옥 선생님들이 그들인데 그 분들은 YMCA 교사회를 만들고 교협을 만들고 전교조를 만들었다. 그 사이사이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 글쓰기회를 만들어 모이기도 하고, 선생님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교과연구를 하기도 하고 문화행사를 기획하기도 하면서 나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86년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전교조 합법화 투쟁의 지원군으로 자주 집회에 참석했다.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집회에 참석했다가 부러진 힐을 들고 줄행랑을 치던 여선생님, 경북대학교 집회에서 최루탄을 맞아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서도 -이놈들아, 너희들은 우리에게 배운 학생이 아니냐?-며 일갈하던 선생님들의 함성과 울분이 아직도 나에게는 이명(耳鳴)처럼 자주 찾아 온다. 
그렇게 전교조 언저리를 맴돌던 나는 89년 새내기 교사가 된 아내를 만났다. 문학동인 활동을 함께 하다가 봉화의 한 초등 분교로 발령을 받은 아내는 나보다 더 전교조에 깊이 빠졌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전교조를 사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전교조 덕을 크게 본 것은 91년이다. 아내는 시국선언에 서명을 했고 아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사흘도래로 장인 장모를 학부모 부르듯이 학교로 불러 회유하고 협박했다. 아내는 화병으로 눕고 장모는 그런 아내를 달래고 하는 우울한 실랑이가 계속되던 어느날 결사반대의 기치로 결혼을 반대하던 장모는 자진해서 백기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더 이상 모르겠다. 자네가 데려가서 자네들 방식대로 살아라- 
전교조 덕에 결혼까지 했으니 나 또한 전교조를 깊이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 사이 누나라고 부르던 배주영 선생님이 죽고, 형님이라고 부르던 정영상 선생님이 죽었다. 나는 아직도 비오는 봄의 주영이 누나 장례식을 잊지 못한다. 북을 메고 북채를 들고 장례행렬을 뒤따르며 내가 빗물에 섞어 흘려보낸 눈물의 의미를 잊지 못한다. 나는 암담했고 절망했으며 분노하면서도 회의했다.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전교조 합법화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청춘을 바치고 사랑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는 이 기나긴 행렬이 못내 의심스러웠다. 
그 사이,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지나면서 전교조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안착되는 시점에서 노사정위원회의 빅딜을 통해서 1998년 겨우겨우 합법화되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근대적 국가주의 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 중의 하나인 전교조가 국가주의의 미시적 파시즘에 포섭되어 그렇게 합법의 외투를 걸쳐야 할 이유가 있었던가? 

합법화는 바로 몸집 불리기로 이어졌고 성과급반납투쟁을 거치면서 가장 취약했던 초등부분까지를 불려나간 전교조는 이제 10만 조합원을 헤아리는 거대조직으로 성장했다. 

노동은 공장의 담을 넘어 사회로 

전교조 10만 조합원시대는 꿈같은 일이었지만 그 꿈이 해피엔딩이 될 지에 대해서는 나는 여전히 장담하지 못한다. 지난해 봄 나는 한 학교의 학운위 지역위원으로 입후보한 적이 있다. 학운위 위원 중 다행스럽게도 교사위원 두 분이 전교조 조합원이었고 우리 학부모회에서도 학부모위원으로 두 명을 진출시킨 상태. 예정대로라면 나는 지역위원으로 학운위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떨어졌다. 전교조 교사들의 반란표에 의해서. 투표 전날까지도 믿고 있었던 전교조 선생님은 학교에 득이 된다는 논리로 마을금고 이사장을 적극 추천하고 지지하는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분이 학운위 위원이 되어 지금도 학교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득(?)을 주고 있다. 학운위의 중요성에 전교조와 우리는 공감했고 학운위 진출사업이 그 해 봄의 연대의 고리였다. 사전에 지지에 대한 확인까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떨어졌고 나는 10만의 허상을 보았다. 수적 증가가, 혹은 대중조직으로의 변모가 이토록 허망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여전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변한 것은 전교조만이 아니다. 그 사이 세상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권위주의 정권은 청산되었지만 자본의 영향력은 갈수록 초국적으로 강화되고 있고 정부는 자본 앞에서 뿐만 아니라 복지와 생존권 문제 앞에서도 더욱 무력해지고 있다. 노동자 계급은 이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임시직, 일용직, 비정규직 등으로 분화되었고 실업자 층이 형성되었다. 
노동조합 운동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강화되었지만 민주노총은 변화하는 세계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고 예의 특유의 속도전으로 정당이 만들어지고 운동진영은 계급운동과 시민운동, 또 다른 차원에서의 대안운동까지 다양화되고 분화되었다. 
노동자의 문제는 더 이상 공장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노동은 공장의 담을 넘어 사회화되었고 노동자는 더 이상 임노동자로서가 아닌 사회적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할 시기를 맞았다. 달리 말하면 교육문제는 더 이상 학교 안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교사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대중 속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광범위한 컨센서스 속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된 것이다. 

지금은 혁명이 아니라 다중의 활력이 필요할 때 

최근 전교조는 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연대의 틀을 재구축하고 강화된 계급전선을 통해서 교육문제를 풀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의 최고 조직으로서, 의식화된 엘리트집단의 강점에 수적 우세까지 더해졌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나는 우려스럽다. 중국혁명기 마오는 1%의 잘 조직된 민중들이 있으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조직화의 어려움과 조직화의 힘을 함께 강조한 이야기다. 전교조 10만의 속내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자. 노동조합은 비합법 시절의 전교조보다 계급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일한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도 않다. 학습권 보다 교권을 강조하고 방어한다. 사회의 진보 보다 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한다. 통일운동에 대한 담론은 희석되었고 현장 단위의 조합원 교육은 힘을 얻지 못한다. 심지어 지도부가 현재 하고있는 일에 대해서 나보다가 더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이러한 사실은 전교조가 우려해야 할 부분이 아니다. 단지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조직 내부가 이렇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사회의 구성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계급운동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의 다양한 가치와 제3의 길찾기가 가지는 유의미성까지를 인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자본주의의 혁명적 변혁이 아니라 인류의 새로운 길찾기이며 모색이기 때문이다. 다중의 활력(네그리)을 토대로 공명의 장치들을 만들어가는 길이 전교조의 10만을 오롯이 10만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중들의 지근거리에 진지를 구축하라 

전교조는 그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는가? 언젠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참기름 한 병을 들고 문 밖에 와 있는 학부모를 만난 적이 있다. 아내는 한사코 거절했고 그 학부모는 화를 내면서 -선생님이 전교조 선생님이기 때문에 참기름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 전교조는 전/교/조 세 글자가 상징하는 높은 도덕성과 깊이를 잴 수 없는 신뢰성을 먹고 살았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같이 놀았으며 저녁에는 학부모들을 만나고 휴일에는 집회에 나가 전단을 돌리고, 생존권을 걸고 시국선언을 하고, 해직을 마다않고 교장의 무소불위의 권위에 항의하고 교육청에 저항했으며 돌아와서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생님들로 인정받았다. 가히 철인적인 헌신이자 투쟁이었다. 
학부모들을 포함한 대중들은 -전교조표-를 -믿을표-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전교조는 강고한 교육관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가? 그렇지 않다. 전교조 교사도 돈봉투 받고, 애들 두들겨 패고, 새콤 핑계 대고 4시만 넘으면 학교가 텅 비고, 심지어 각종 좋지 못한 사건에도 자주 연루된다. 
나는 전교조가 현장단위로 재구축되기를 기대한다. 학교는 교육의 현장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매개로 한 끈끈한 귀속의식, 동문문화를 중심으로 그 지역의 공동체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조합원 한 명을 늘리기 위해 신문을 들고 유인물을 들고 동료 교사의 자취방을 방문하고 골골이 학교를 누비고 다니던 정신으로 돌아가, 학교 공동체에서 교사의 중심적인 역할과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전교조 교사기 때문에 흠잡히지 않으려고 더욱 조심하고 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책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노력하던 진정성으로 돌아가 신뢰와 품성을 회복해야 한다. 
분회가 모여 지회가 되고 지회가 모여 지부가 되고 중앙이 되는 조직의 속성은 하부단위가 강화되어야 충족될 수 있으며 이러한 하부단위를 통해서 중앙은 10만 대군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게릴라로 살아오던 때와 비교해서 지금은 얼마나 좋은가! 공식적으로 조합원 교육시간을 배정할 수 있고 교육부에서 준 돈으로 폼나는 사무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금이야말로 대중의 지근거리에 진지를 구축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게릴라적 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