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호기를 분단고착으로 몰아가지 말라!

  1주일 여 전에 한겨레 신문 '왜냐면'에 남북 수교를 제안하는 글이 나왔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1991년 남·북측은 유엔에 동시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 각 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국군의 주적은 북측이며, 주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단체가 지천에 널려있다. 그래서 남편의 10주기에 참석해 준 데 대한 답례로 김일성 주석 10주기에 참가하고자 했던 박용길 장로 일행의 방북은 무산되었다. 그런데, 일개 개인의 명의로 신문에 글을 실어 주적과 수교를 하자는 제안을 하다니... 김용한씨의 글을 읽고 우선 드는 느낌이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다.

  지지부진한 통일논의가 답답했을 터이고, 여전히 분단을 통해 동북아 정책을 유지하는 미국과 사욕을 채우는 정치인·수구세력들이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수교라도 하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너무 위험한 발상일 뿐이다. 긴 지면이 할애되지 않을 것이므로, 일본수교와 북측을 비교하는 이 글이 가지는 논리상의 문제점은 차치하고, 수교 제안이 가지는 위험함만이라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가 통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과의 수교처럼 하나의 우방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분단 이후 우리 사회는 역사적 지리적 분단뿐만 아니라 총체적 분단을 겪어왔다. 남측은 분단을 빌미로 반공규율의 제도적 틀 속에서 모든 것이 흑/백과 반/합으로 분단되었으며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정상성'을 경험하지 못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의문사, 친일, 이라크 파병 등 거대한 문제들의 이면에는 분단이라는 두 글자가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다.
  세계사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비에트 붕괴 전까지는 미소냉전의 각축장으로 그 이후에도 미국의 패권적 세계화의 희생물로 존재했으며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경제대국, 문화대국으로 성장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수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통일을 통해서 진정한 민족의 해방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자유도 평등도 이 땅에서는 '통일'과 함께 완전해질 수 있는 쌍생아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20세기가 폭력의 세기였다면 우리의 20세기는 '통일'을 통해서만 끝낼 수 있는 진행형의 역사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는 분단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통일의 호기를 맞고 있다. 이라크 전 이후 미국 부시정권은 세계 진보세력으로부터 고립되고 있으며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두만강 특구와 관광사업 등을 통해 슬기롭게 풀어가고 있다. 남한에서도 경제 불황에 따라 군비감축을 포함한 통일의 현실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제 통일은 이산가족에게만 아니라 민족 모두의 공존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수교론'을 통해 조급성을 드러내고 분단고착을 옹호하고자 하는 저의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어 온 통일의 길은 신문 지상을 통해 오가는 설전처럼 진행되어 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문과 투옥과 생명을 바쳐 이어 온 길이다. 수교나 하자고 그 많은 분들이 죽어 간 것은 아니다. 그 분들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