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의를 넘어 평화의 세계화를 이루자.

어릴 때 우리 세대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자라났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물론이고 한 술 더 떠서, 음악시험은 애국가 가사 4절까지 쓰기였습니다. 국가는 거역할 수 없는 불가역의 영역이었으며, 우리의 출생 자체에 ꡐ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ꡑ이 부여되었던 것입니다.
근대민족국가는 나라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렇게 스스로 배타적 국가주의를 토대로 자라났습니다. 제1세계의 터무니없는 국가 우월주의가 있었다면, 우리가 속한 제3세계는 식민지 지배에 맞서 발흥된 저항적 민족주의․국가주의가 식민 종주국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가 온갖 전쟁을 정당화하고 인간을 살상하고 이웃을 침략하던 시기를 지나 21세기, 세계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는 각각의 나라들이 내세우는 이념과 지향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 즉 자유 평등 사랑 정의 따위가 우선시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많은 석학들이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직면한 21세기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최근 일본은 독도문제를 중심으로 영토확장을 노골화하고 있고, 교과서 왜곡을 통해 일본중심의 사관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의 아전인수격 주장도 눈여겨볼 만한 일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미국의 제국주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20세기 이데올로기 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ꡐ세계의 보안관ꡑ을 자처하며 자국의 논리가 모든 보편적 가치를 압도하는 진리인 양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이라고, 중국이라고 이런 야심이 없겠습니까? 잠재된 버릇 국가주의는 미국의 논리를 등에 업고 도처에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라크 파병을 통해서 우리 안의 국가주의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ꡐ정의ꡑ의 이름이 아니라 ꡐ국익ꡑ을 위해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했고, 국가의 ꡐ안위ꡑ가 아닌 단순히 국가의 ꡐ이익ꡑ을 위해서 다른 나라 민중들을 살상하는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논쟁에 우리가 떳떳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20세기를 ꡐ폭력의 세기ꡑ라고 말했습니다. 전쟁과 폭력의 세기를 이겨낸 인류가 21세기를 인류문명의 축복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서는 진리와 정의의 이념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지난 세기 내내 우리는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숱한 영령들이 조국의 이름 앞에 개인적 삶과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 지난한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일국적 가치를 넘어서는 인류 공동의 선과 평화를 추구하는 길을 정의라고 이름짓고 그 길에 전 세계 민중들이 함께 하는 평화의 세계화를 이룩해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더 이상 이 땅에서 조국의 이름으로 개인의 목숨을 강요하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길일 것입니다.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