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 참교육학부모회 카페에서 회원들과 이런 저런 일들을 논의하다 '그러지 말고 만나자'는 제안이 통과돼 소위 '벙개'라는 것을 했다. 일 얘기 사는 얘기 하다가 '근데 모르는 사람하고 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것 참 피곤하더라, 신상 파악하는데 몇 시간이고..... 알고 보면 생각은 딴 데 있고...' 했더니 이런 저런 경험담이 쏟아졌다.

'사는데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꼭 한 가지만 줄기차게 이야기 해야되나. 너무 재미없잖아. 그래서 모르는 사람하고 채팅하는 건 그만뒀어' 했더니 한 선배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볼 때 너 같은 아줌마는 건전한(?) 채팅문화를 어지럽히는 암적인 존재라는 것 아냐?' 한다. 집에 돌아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지' 생각하니 그냥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다. 별 이상한 인간들도 다 있네 할 일만도 아니다.

나는 딱 두 번 모르는 사람과 채팅을 해봤다. 어디 사는지.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몇 인지까지 신상명세서가 작성되면 남자친구 있냐로 들어간다. 그러다 전화번호 가르쳐 달라느니, 만나러 가면 볼 수 있냐느니.... 본론이 시작된다. 그랬다. 내가 두 번의 채팅으로 안 것들이다. 날아오는 쪽지들은 더 심각하다. '누나 나랑 화끈하게 놀아요'부터 '폰섹 하실래요'까지 그 원색 현란함이란, 14년 경력의 아줌마로 한때 성교육 강사였던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에리베이트에서 여중생을 성폭행하려던 고등학생이 혀가 잘렸다고 하고, 채팅에서 만난 여고생을 성폭행하려다 잡힌 어떤 아저씨가 뉴스의 한켠을 채우고 있다. 남의 인생을 자기 욕심대로만 하고 싶은 사람들. 그러나 피해자만 불행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 때의 잘못으로 자기 인생을 저당 잡힌 그 사람들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방통행 길은 막아야한다.

밤늦은 시간 익명의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을 서로 그렇고 그렇다고 지레짐작하고, 얼굴 안 보이는데 까짓 거 겁날 것 있냐까지 합쳐져 마구 용감해지고 있는 거라면. 우리는 솔직하게 드러내 토론하고, 어떤 공간에서든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먹고 자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유독 性이라는 문제만 막힌 공간에서 얼굴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 해야한다는 생각부터 바꿨으면 좋겠다.

'전문적인 방들, 문학이나 음악 같은데 잘 찾으면 굉장히 수준 높은 방도 많아요' 후배의 설명이 아니어도 안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여전히 우리가 함께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사이버 공간을 나는 사랑한다. 사람들이 만든 문명이 저 혼자 타락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떤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몫일 뿐..... 채팅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은 성폭력 사건을 줄이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사실은 너도 나하고 똑같잖아' 비겁하게 숨어서 자기를 합리화 할 일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진정한 용기를 내야한다. 콩 심은 곳에는 콩이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