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참교육 까페에 들렀더니 복주초등학교 성희롱 사건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지난 달 25일 3학년 담임들이 모인 회식자리에 교장과 교감이 참석했고, 젊은 여선생이 교감으로부터 교장한테 술을 따르라는 강요를 받았다는 게 요지였다. '나는 언제까지 그런 인간들하고 한 하늘을 이고 살아야 하나!' 치미는 분노를 누르느라 한참동안 좁은 거실을 왔다갔다해야 했다. 

오늘 아침, "성희롱 사건 신문에 났더라" 전화를 받고 급히 구해 본 기사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OO교사는 "회식에서 교감이 여교사들에게 '잔 비우고 교장 선생님께 술 한잔씩 따르지'라고 거듭 술따르기를 강요했다"며 "내키지 않아 계속 따르지 않고 있었지만, 이름까지 부르면서 요구할 때는 거절할 수 없어 모욕감을 참고 결국 술을 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다음날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런 행동이 왜 잘못됐는지 조차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여 그대로 덮어둘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한겨레.10월 8일) 』겨우 잠재웠던 분노가 또 거꾸로 치밀어 올랐다.

대부분 성희롱은 매우 사적인 행동이며 사소한 일로 취급되고,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제 3자에게는 장난거리나 유머로 보일 수도 있다. 더 기막힌 것은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져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면 직장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사나 동료들과 부딪히고 싫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희롱은 그 어떤 인격모욕과도 다르다. 성희롱은 가부장적이고 퇴폐 향락적인 남성중심의 직장 문화와 접대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여성의 근로의사나 능력 지위, 인격, 감정을 무시하고 성적 대상화하여 인간으로서의 자주성 자체를 회의하게 하는 아주 심각한 범죄이다. 

친밀감을 꼭 자신의 품격을 낮추고 저급함을 드러냄으로써 나타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을 당하는 여성들이 싫다고 표현해도 언제나 '속으로는 좋으면서' 자기들 멋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 높은 자리를 이용해 강압적으로 따른 술을 마시는 것이 진정 그네들한테 행복한 일인지, 성희롱 천국에서 꼭 세상의 반인 여성들이 힘겨워 해야하는 것인지.... 누구에게든 물어보고 싶다.

피해 선생님 남편이 교육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읽으면서, 이 문제는 '사람'이란 관점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확고히 굳힐 수 있었다. 당신 딸이 마누라가 당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에서 출발해서는 안 되고,  남녀 대립 구도로 몰고 가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싫은 일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남녀차별의 높은 벽 속에서도 꿋꿋이 견뎌온, 직장생활에 부적합한 인물이란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을 지적한, 앞으로 어떤 대우를 받을 지 모르는 불안감을 이기고 지금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 한 선생님이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기필코 행복한 일이란 희망을 받아 들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길이 될 것이며, '성희롱 천국'을 '사람의 천국'으로 바꾸는 작은 물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