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한창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시간에 한가하게 복지관에 놀러 갔다. 아이들 중 몇 명이 공개수업 때문에 교실 꾸미기를 한다고 오지 않은 탓이다. 날씨는 더 없이 맑고, 다음 수업 때문에 먼 곳에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집에 들어가 앉았다가 나오기는 싫고, '그래 선배 일하는 것도 보고 오늘 가보자.' 아주 가벼운 걸음으로 복지관 2층 계단을 올랐다.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다니 "야, 이 시간에 니가 웬일이로?" 낮 익은 소리가 들려 창으로 들여다보니 아이들 여섯이 제각기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다. 

고개를 다 들지 못하고, 손을 오그리고 있는 아이들. 그 얼굴에 미소는 왜 그리도 환한지. 갑자기 심장이 아파 오고,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도 잠시 '안녕하세요?' 인사들이 쏟아졌다. 교실로 들어가니 쉼 없이 쳐다보면서 말을 건다. '이름? 나이?' 열심히 들어야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소리다. '어, 아줌마 이름은 정순임, 나이는 서른 일곱'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 하며 대답을 하고, 아이들 이름을 돌아가며 물어보고 인사를 했다. 

"아줌마! 아줌마!" 자기한테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나를 불러대던 아이는 눈동자가 너무도 맑았다. "아파트로 놀러 오세요." 얼마 전 이사했다는 아이는 생면부지의 나를 자꾸만 자기 집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눈물이 날까 겁이 나서 "있잖아 아줌마가 급히 오느라고 그냥 왔는데 너거 뭐 먹고 싶은데." 큰 소리로 묻고서 잠시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선배 언니는"이 아이들한테 정말 필요한 건 비장애아들과 함께 교육하는 거야. 그래야 장애아들은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비장애아들은 장애아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학교를 마치고 우리 아이들이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시간, 그 아이들은 집에 갇혀 있어야 한단다. 그나마 선배로 인해서 일주일에 삼일은 집밖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아이들, 언니는 그 아이들을 모른척할 수 없다고 했다.

'장애인 올림픽 대표선수를 뽑아 놓고 '장애인 주제에 대표선수라는 이름 준 것도 어딘데.' 선수들을 문턱은 높고, 비가 새는 여관에다 쳐 박두고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관리들이 사는 나라. 장애인시설을 세운다고 하면 '우리 아이 교육에 안 좋아서' 너도나도 반대를 해대는 부모들이 사는 나라. 하긴 어찌 그것만이 문제일까?  내 앞에 닥친 일이 아니니 일정정도 외면할 수 있었고, 우연히 만나면 가슴 아프고 불쌍해하는 것으로 자신을 달랜 내 잘못이 일어나 심장을 찔렀다.

"다시 올게" 나만 따라 움직이던 아이들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아주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여자가 떠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없었던 사람. 자궁이 보통사람의 삼분의 일밖에 안돼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 어떻게 그렇게 용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냐는 물음에 그녀는 말했다. "친구들은 나를 위해 내가 하기 힘든 경기의 규칙을 바꾸어 주었고,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살 수 있었다"고. 

나는 그 아이들을 만난 이후 가슴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 덩어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히 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가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확인이며, 조금 서투르고 늦더라도 함께 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량한 동정심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이제 그네들과 함께 아주 긴 나들이를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서로 엉켜 장애, 비장애가 구분이 되지 않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