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열흘을 방구들 지고 끙끙, 겨우 아이들 가르치고 들어와 찜질 팩 깔고 낑낑, 그렇게 지냈다. 지지난 목요일이었다. 며칠 허리가 뻐근하고 아팠지만 엎드려서 책을 봐서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는데 머리를 감으려다 다리를 접고 주저앉아야 했다. 겨우 거품만 헹구고 엉금엉금 기어 방에 와 누웠다가 펴지지 않는 허리를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다. 그러고 돌아왔어야 했는데 저녁에 대학원 수업이 있었던 터라 학교에 간 것이 화근이었을까? 수업을 시작하고 한 시간을 견디는데 너무 아프니 작정도 없이 눈물이 났다. 결국 택시를 불러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금요일 수업만 빠지고 한 이틀, 침 맞고 쉬면 괜찮아지려니 했는데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자꾸만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다. '너거 방 좀 정리해라' 해도 될 일을 "아파서 엄마 없으면 너거는 끈 떨어진 연이야. 아냐? 방도 좀 치우고 설거지도 좀 하고..." 한 사흘 식구들을 볶아대면서 미안한 줄도 몰랐다. "선생님 저 해야할 일이 많거든요, 빨리 나아야 되요" 온갖 인상을 쓰고 굉장히 바쁜 사람인 척 내가 한 말에 나보다 젊어 보이는 한의사는 "아프면 못하는 거죠" 너무도 간단하게 말했다. 그 순간 가슴을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편하게 생각하자.' 거짓말처럼 신경질이 가라앉았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어느 누구도 자기 인생이라고 마음대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느낀 또 하나는 건강을 책임지지 않고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저거, 그 다음엔 이 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어긋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살았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얻은 결론이다. 나를 낳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걱정을 놓아본 적이 없을 우리 엄마와 "엄마 아프지 마세요. 엄마 없으면 못살아요. 아시죠?" 학교 갔다와서 눈물을 쏟아 놓던 내 딸에게 내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가 건강일 것이다. 

같이 찜질 방을 가준 선배에게, 어느 한의원이 더 좋다는 정보를 쉼 없이 전해온 후배에게, 과일을 사 보내고, 피자를 배달시키고, 벌을 잡아 벌침을 놓아주러 오겠다던 대학원 동료들에게, 일년에 한번 있는 동창들 모임에 못 가서 가슴 아파하고 있을 때 단체로 병 문안을 와준 동창들에게, 찜질 팩을 태워먹고 사오라고 전화를 했을 때 지체 없이 달려와 준 친구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안부전화를 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다면 그  시작도 역시 건강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움직이는 게 쉽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면서 본 하늘은 참 아름답다.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그것도 상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건강을 자신하고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어른들이 한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길지 않았지만 아픔이라는 터널을 지나면서 나랑 한가지 약속을 했다. 운동을 하자고. 모든 사람들이 건강할 때 자기 자신을 지키기를 바란다. 인생의 프로들이 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