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며칠 수다에 빠져 살았다. 날씨가 추워지니 사람이 생각나는 것인지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들이 부쩍 전화를 해댄다. 학교 다닐 때 누가 어땠다느니, 그것 몰랐냐느니, 서로의 기억들을 짜맞추기 하다 친구는 불쑥 말을 꺼낸다. 
"니는 애인 없나?." 
"이 아줌마가...... 갑자기 무신 애인." 정색을 하는 나를 향해  
"요즈음 애인 없는 아줌마 하나도 없다 안 카더나." 능청스레 말을 잇는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자못 심각하게 새벽을 넘기고 말았다. 

배우자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들키지 않으면 가정을 지켰다고 한다니 참 장한 일이다.
도대체 '열심히 지키는 가정'은 어떤 거고, '산뜻한 연애'는 또 뭐란 말인가? 이런 이중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어떤 이유로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구자 취급하는 사회의식 때문일 것이다. 반쪽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완전한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사회의 단면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온전하다. 조금 찌그러지고 이빨이 빠졌을 지라도 이미 하나의 원이란 뜻이다. 

또 다른 이유는 가정을 혈연 집단이라고 믿고 있는 까닭이다. 내가 아는 한 가정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솥밥 먹어가며 서로를 믿고, 함께 고통을 이기고, 기쁨을 나누며 보듬고 사는 곳이다. 구지 혈연을 끌어다 붙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구성원을 위선 속에 가두고, 자식을 담보로 줄타기를 하는 것을 가정이라 할 수는 없다.

'카더라 통신'은 가끔 문제의 핵심을 담고 있다. 아줌마, 아저씨들의 산뜻한 연애도 나는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돈만 벌어오면 용서할 수 있었던 시대를 넘어, 밥하고 애들 뒷바라지 다 해놓고 나왔으니 나라고 안될 것 있냐는 곳에까지 왔다면 차분히 생각해야 한다. 가정과 연애는 전부 사랑으로 유지된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가정이란 울타리에 한 사람, 밖에 있는 산뜻한 한 사람 그것은 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정을, 사랑을 지키는 정당한 방법은 두 가지다.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하기'로 한 맹세를 따라 좀 미워지고, 견딜 수 없어지더라도 봐주고 노력하는 것이 그 하나다. 흔히 사랑을 유리에 비유한다. 한 번 깨지면 붙일 수 없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그건 옛 말이다. 깨진 유리를 감쪽같이 붙일 수 있는 제품들을 어디서건 살 수 있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노력한다면 어떤 허물도 감싸안고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이 원칙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다 그렇게 살 수 없으리라. 사람은 다면적이고 사랑은 언제나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보다 훨씬 사랑하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운명적 사랑'을 만났다고 믿는다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솔직해져야 한다. 그것이 가정을 유지하는 또 한 길이다. 함께 하고 미워하는 것보다, 이해하며 해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사랑'을 믿는다. 사랑에 들떠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을 때도 그랬고, 그것이 날 절망이게 할 때도 그랬다. 사랑이란 대가 없이 키울 수 없다. 온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이해할 때만 유지 할 수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선택을 하며 산다. 그 선택이 어떤 것이든, 솔직하게 자신이 한 일들을 책임지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아주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며 수다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