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1948년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대통령제가 시작되었으니, 5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8명의 대통령이 있었고 우린 지금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8명이 만든 15대는, 이승만이 세 번, 박정희가 다섯 번, 전두환이 두 번을 했기에 만들어 낸 숫자다. 

난 태어나서 중학교 삼 학년이 되는 해까지 한 명의 대통령만 보고 살았다. 원래 대통령은 한 사람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 총을 맞고 죽던 날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오열했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홉에 아버지를 보내면서도 죽음이 무엇인지 몰라 울지 못했던 내가 어찌 그리도 서럽게 울었던지...... 자다가 생각해도 기막힌 일이다.

어쨌든 민중들의 피와 눈물, 권력자들의 영욕의 세월이 어우러진 우리 근대사는 역사 속으로 묻히고 우리는 또 다른 역사를 써야하는 중요한 시점에 섰다. 나는 요즈음 거리마다 붙어 있는 벽보판 앞에 가끔 우두커니 서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가? 생각하면서.

난 한동안 정치 무용론에 빠져 있었고, 선거는 해서 뭐하나? 하는 아주 비생산적인 고민을 했었다. 그 때 나는 영원토록 역사의 주변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변혁'이란 단어에 대한 짝사랑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사회당이란 당도 있나, 참 세상 많이 좋아졌다.' 지나는 사람들이 놀란다. 그 말을 써도 잡혀가지 않는다는 것에 적응이 안 된다는 뜻일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는데 대한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대가라고 믿는다.

의식하지 않아도 세상은 변한다. 그게 좋은 방향이든 그 반대의 현상이든 날마다 변하고 있다. 아무리 목적을 가지고 노력해도 어느 시점이 되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도 많다. 나는 가장 진보적인 정당에 투표할 생각이다. 아직도 우리가 바꾸고, 가꾸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탓이고, 권력의 속성상, 정권을 잡은 정당은 보수와 타협하기 마련이라면, 보다 더 진보적인 당과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차선책이라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존재하지 않는, 당의 실현 가능한 정책과 후보의 자질로 평가 할 수 있는 선거다. 그렇게 될 것이다. 성급하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보수들이 진보인양 포장하고, 안간힘을 쓴다고 해도 이미 변해버린 세태를 되돌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미국만이 살길이었던 그 50년이 넘는 철학이 믿음이, 우리 사회의 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현장을. 새로운 철학과 도덕은 해체의 고통을 동반하지만 역사는 누구의 힘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언제나 그 속에 있을 것이다. 오늘 최선의 방법이 없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뽑기는 우리가 초등학교 뒷골목 문구점에서 하던 또뽑기와는 다르다. 뽑은 뒤 꽝이면 마음이 쬐끔 아프면 되고, 일등이면 잠시 하늘을 날 듯이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일이란 뜻이다. 자주국가의 최고책임자로서 어느 곳에서나 국민들의 권리를 위해 당당할 수 있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사람을 꼭꼭 찝어 뽑아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