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말이면 어김없이 뉴스에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4일 밤 10시쯤 해운대구 중동 모횟집에서 친구들과 부부동반 송년회를 마친 뒤 다음날 오전 6시에 다시 복국집에서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고 헤어져 사우나에서 잠을 자던 정모씨가 숨졌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한해를 보내는 모임, 그 한해를 잊자는 모임에서 늘 문제의 핵심이 되는 음주문화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삼국시대까지는 부여나 영고등 추수행사에서 술을 빚어 전체 백성들이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먹을거리도 모자랐으니 사사로이 술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삼국시대에 귀족들을 고객으로 하는 술집이 생기고, 통일신라 이후 일반 백성들을 위한 음주장소가 생겼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식자들은 울분을 삭히기 위해 술을 마셨다. 일본은 1909년 주세령을 실시하고 1916년부터 강제 단속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전통주의 명맥은 거의 끊어지고 말았다. 민족말살정책으로 명절도 제대로 셀 수 없었고 조선시대까지의 음주문화는 사라졌다. 해방후 미군의 주둔으로 부유층에선 양주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서민들은 저마다 집에서 막걸리를 담그기 시작했다.

그 이후 1960-70년대는 모든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돈을 따라 몰려들었고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사람은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늦게까지 일하고 짧은 시간에 고달픔을 잊기 위해 마셔야했던 술이었고, 경제가 호전되면서 접대로 인해 마셔야 했던 술이었으며, 독재에 항거해 마셨던 술이었다. 

1970년대 말부터 맥주와 양주의 소비는 급격히 늘어났다. 사회 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법규정과 돈만 벌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배금주의가 판을 치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접대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삼국시대 이후 특수층에만 면면히 내려오던 고급 술집들이 대중들의 차지가 된 것이다. 이제 취하자고 마시는 것을 지나 돈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술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죽 찾아서 쓰다보니 근대 이후 우리의 음주문화는 거의가 부정적이다. 분노와 좌절, 강제와 허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위한 싸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마신 술은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지금도 20세 이상의 성인 한 사람이 이틀에 소주 1병을 마신다고 하니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送年會, 忘年會라는 이름의 술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년말 모임의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다. 한해를 생각하자는 의미에서 想年會나 顧年會는 어떨까? 꼭 술이 아니어도 직장동료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모여 우리가 산 한해를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모임을 가질 수 있다. 망가지기 위해서, 잊어버리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면 조금의 술이 있어 나쁠 것도 없다.

나는 며칠 전, 종강을 겸해 간 답사에서 뜻하지 않게 해맞이를 했다. 일어나!! 해가 뜨고 있어. 빨리 일어나!! 부지런한 언니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떨어지지 않은 눈으로 마주선 저 지평선 너머에서 빨간 알몸을 조금씩 내미는 것이 있었다. 아주 동그랗게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그렇게 문득 솟아올랐다. 그러다가 서서히 색깔을 바꾸고 너울거리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날마다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아주 맑은 정신으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