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아 안녕,

오늘 아빠는 목이 아파서 담배를 끊을까 잠깐! 아주 잠깐 결심을 했단다.
그런데 지금은 멋있게 담배를 물고 이 글을 쓰고있구나. 이럴 때 다은이는 아빠가 멋있니? 아니면 한심하니?
아빠 변명을 잠깐 들어줄래?
아빠가 요즘 혼자 있잖니. 그래서 오늘처럼 한가한 일요일 하루종일 집에 있다보면 다은이도 보고싶고 규진이도 보고싶어서 담배를 한 대씩 피우게 된단다. 그리고 요즘 아빠는 속상한 일이 좀 많아서 술을 자주 먹게되는데 그 술이라는 게 꼭 애인처럼 담배랑 함께 다니거든. 마음 넓은 네가 좀 이해해주렴.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구나.
빗살처럼 서 있는 앞산의 나무들이 이제 곧 봄이 올거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아빠는 새학년이 되는 아이들처럼 몇 가지 계획을 세워보려고 한다.
아빤 올해에 공부를 좀 하고 싶단다. 지난 몇 년간 아빠는 너도 알다시피 참교육학부모회 일을 열심히 했단다. 다은이가 다니는 학교가 참 좋은 학교가 되길 바라며, 다은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참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잘못된 법도 고쳐보려고 하고 아빠의 생각도 바꿔보려고 한 일이 그 일인데, 그 결과 다은이는 잘 못느끼겠지만 아빠는 참 많이 변했단다. 
그래서 기왕에 하는 일 좀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올해에는 우선 학생이 되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단다. 아빠 응원해줄꺼지?

그리고 아빠는 올 해 좀 단순해져보기로 했단다. 아빠가 원래 재주가 많아서 뭐든지 잘하잖아 그지?
아빤 하고싶은 것이 너무 많았단다. 우선, 이쁜 사람을 보면 사진이 찍고 싶었다. 그리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아서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했지. 이렇게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면 여행을 하고 싶고, 좋은 책을 읽으면 나도 글을 써서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지.
그러다보니까 정작 아빠는 그 누구보다가 최고로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단다. 사진은 잘 찍기는 하지만 일탁이 아저씨보다 더 못 찍고 돈은 벌어도 벌어도 부자가 되지 않고, 여행은커녕 다은이 보러도 잘 못 가는 신세고, 어느새 시 쓰는 방법도 잊어가고 있는 거야. 

아빠는 올 해 좀 단순해지기 위해서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단다. 우선 카메라를 팔아버렸다. 이쁜 다은이가 없으니 사실 찍을 모델이 없어서도 당장은 필요 없을 것 같았거든. 그리고 좀 더 단순해지기 위해서 먹는 것 외에는 하나도 안 사고 살아보기로 했지. 여행도 다은이 보러 가는 것 외에는 꿈도 꾸지 않기로 했고, 시도 억지로 쓰지 않을 거다. 잘 될까? 노력할테야.

다은이도 이제 5학년이 되는구나.
4학년 때 다은이가 "난 이제 사춘기야" 했으니 이제 5춘기가 되는 건가?
다은아. 언제 장난꾸러기 규진이가 없을 때 좀 조용해지면 거기 천탑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5학년이 되는 다은이를 생각해보렴.

2003년, 12살, 5학년, 피다은.
올해에는 엄마가 뭐라고 해도 난 이것만은 꼭 해야지. 그리고 내 단점 중에 이것만은 꼭 고쳐야지...그렇게 마음 속으로 결심을 하고 5학년을 보내길 바란다.
그래서 나중에 아빠와 만나서, 다은이가 어떻게 그 결심을 실천했는지, 아빠는 어떻게 공부와 단순해지기를 했는지를 이야기해보자꾸나.
그 결심 속에 아빠에게 자주 메일 보내기는 필수인 거 알지?

5학년 다은이, 축하한다. 화이팅!!
 
#네 살 때 다은이 사진 한 장 보낸다. 거의 엽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