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이에게.

오늘 오후 늦게 할아버지를 뵙고 나오는데 눈이 오더구나.
어두운 하늘에서 흰 눈이 내려와 가로등을 지날 때쯤이면 반짝 빛이 나지. 난 그게 꼭 쌀밥 같았단다.  

다은이도 알고 있겠지만 대구에서 지하철에 불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단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있어서 가슴이 참 많이 아프네. 내일 아침 먹기 전에 다은이가 엄마랑 규진이랑 함께, 불쌍하고 억울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해주길 바란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죽는지 모르겠구나.
그저께 어떤 교수님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북한에서 지난 몇 년간 350만 명이 굶어서 죽었다더구나. 다은이는 350만이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잘 모르지? 다은이 학교 전교생이 350명이 되는지 모르겠다만 다은이 학교 전교생보다 만 배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거란다. 그래도 실감이 안나지?
그런데 어쩌면 다은이가 실감이 안나는 건 '사람 수'가 아니라 '굶어서 죽는다'는 사실일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다은이도 가끔 "엄마 배고파 죽겠어 밥 줘!"하지? 그런데 북한의 많은 어린이들이 정말로 배가 고파서 죽은거야. 한 끼를 굶어도 배가 고파서 다은이는 과자를 먹고 과일을 먹는데 북한의 아이들은 한 끼를 굶고 두 끼를 굶고 그렇게 이틀, 사흘을 굶다가 정말 '배가 고파서' 죽었단다.

다은아 생각나니?
우리 지난 해 여름에 포항 비료공장에 함께 가서 비료를 쌓아놓고 신부님이랑 기도했던거, 기억나니? 그래, 그게 우리가 돈을 모아서 북한에 농사지을 비료를 보내준거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35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는 어깨가 축 쳐져서 돌아왔단다. 
그런데 다은아, 우리가 먹다가 남아서 버리는 밥과 반찬이 1년에 10조원 어치가 넘는데 그 정도면 북한 사람들이 몇 년을 안 굶어죽고 먹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지 않니?
 
아빠는 다은이가 참 마음씨가 곱고 착한 아이라는 것을 안다. 다은이가 어릴 때 아빠랑 규진이랑 함께 약국에 가서 둘이 서로 '기아돕기 저금통'에 돈을 넣으려고 다투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빠는 저절로 흐뭇해지거든.

다은아. 
아빠는 적어도 2003년에는 사람이 굶어서 죽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먼 아프리카도 아니고 바로 우리 민족인 북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은아, 그렇다고 다은이가 함께 굶을 수는 없겠지? 그러나 가끔,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평화와는 다르게 굶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가 주신 용돈을 좀 아껴서 우리가 부자는 아니지만,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쓸 줄 알았으면 한다. 반찬투정을 하다가도 굶어 죽은 북한 아이들을 생각해보고, 비싼 장난감을 갖고 싶을 때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거야. 그게 다이어트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 알고 있지?

자, 그럼 아빠와 함께 내일 아침 기도문을 정리해볼까?

"하느님, 올 해에는 북한의 들판에 함박눈처럼 탐스럽고 풍성한 쌀이 열리게 해 주세요. 굶어서 죽은 사람들과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해 주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