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아침에 눈과 비가 내리다가 멎었다. 다은아 안녕?
오늘 아빠는 기분이 참 좋구나.
오늘이 3.1절이란건 알지? 84년 전 오늘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가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지. 
그런데 오늘은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북한의 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만세'를 불렀단다.
오늘 서울에서 '3.1 민족대회'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는 북측 대표단 105명과 우리측 대표단 300명이 함께 만나 민족 전체의 기념일인 3.1절 기념행사를 함께 하고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선언도 발표하였단다.
아빠는 남측 대표로 이 행사에 참석했는데 처음으로 북측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아 밥도 함께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통일주'라고 이름붙인 술도 마셨단다.
처음엔 믿어지지가 않더니만 '남성동무는 어디서 왔습네까?'하는 예쁜 아가씨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뜨거운 전율이 울컥 목구멍으로 치올라왔단다.
아! 잃어버린 반쪽을 이렇게 찾는구나!
아빠는 당장이라도 통일이 되어 다은이가 있는 텐진까지 기차를 타고 평양을 지나서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술을 연거푸 세 잔이나 마셨구나. 다은이도 기쁘지?
사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불행하게 살았구나.
남북을 다 합해야 8천만 밖에 안되는 민족이 50년 동안이나 떨어져서 부모 형제까지도 얼굴 한 번 못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아야했으니 말이다. 그 뿐이니? 서로 못 잡아먹어서 욕을 하고 미워하고 죽이기도 했구나.
오늘 아빠는 북측의 아저씨랑 누나랑 많은 이야기를 했단다.
북측의 어려운 이야기도 듣고 통일을 바라는 그들의 마음도 들었는데 문득 다은이와 규진이 생각이 나면서 한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단다.
아빠는 그나마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보니까 통일에 대해서 관심도 가지게 되고 어서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염원도 가져보는데 다은이와 규진이는 통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다은이와 규진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또 다른 반쪽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반쪽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다은아. 학교에서 배워서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원래 국경이 중국과 러시아가 있는 대륙과 맞닿아 있는데 외세에 의해서 그만 반쪽으로 갈라져 섬 아닌 섬나라가 되고 말았단다.
아빠는 다은이가 이런 우리나라의 아픔을 기억하고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우리는 꼭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남북 8천만 온 겨레가 진심으로 바라지 않으면 통일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리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온 겨레가 한마음으로 통일을 바라면 꼭 통일이 될 거라는 게 오늘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거든.
가슴 벅찬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어서야 아빠는 또 가슴이 아팠다. 말이 다르고 얼굴이 다른 외국 사람을 만나서도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정이 들고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하면서 주소를 교환했었는데 북측 사람들과는 달랑 이름 석자만 알고 그대로 헤어져야만 하다니...이것이 분단의 설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더구나.
통일이 되면 금강산 여행길에 그들을 우연히라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내일이면 개학이구나.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길 바란다. 건강하자.   

2003년 3월 1일 다은이를 보고싶어하는 아빠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