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국가 중심의 공동체로 진화하던 17세기 말, 베스트팔렌 평화조약 이후의 세계질서는 국익우선의 원칙이 지배하게 되었다.
  국가보다가 상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주권영토국가의 확립이 그것인데 이는 그 이후 수많은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무력에 의한 분쟁의 해결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그로부터 수많은 전쟁이 있었으며 때로 전쟁은 어떤 명분도 없이 대량살상의 비참한 결과와 깊은 자괴감만을 남긴 채 끝나기 일쑤였다.

  21세기, 우리는 두 번의 세계대전쟁을 치르면서 무력에 의하지 않고 분쟁을 해결하고 인류가 공존하는 방법들을 고민하는 시기에 이르렀으며 UN으로 대표되는 세계적 네트워크와 전 지구적 장치들이 이를 대신해주리라는 믿음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인류의 염원을 독단적으로 깔아뭉개고 국제법을 어겨가면서 이라크를 침략했고 국익을 앞세운-그러나 악의 축 제거라는 말도 안되는 명분 뒤에서-무력은 여전히 인류에게 유효한 방법이라며 약육강식의 시대로의 회귀를 선언하고 말았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삼고있는-세계적으로 가장 진보된 인류라고 믿고 있는- 미국의 시민들 중 69%가 전쟁에 찬성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인류의 진보가 허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2차대전과 베트남전쟁으로 죽거나 다친 원혼들의 절규와 피비린내를 그새 다 잊어버린 것이다.
  '국익'의 당사자인 미국이야 또 그렇다고 치자. 백 번 양보해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도륙하고 들어선 그 야만의 역사를 인정한다고 치자.

  그럼, 우리는 뭔가?
  이라크전 파병을 두고 '그렇게 해서라도 미국이 우리의 동족인 이북에 폭탄을 쏟아붓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보자는 충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라크 민중들을 죽여 우리 동포들을 살려보자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논리는 이라크가 이북을 침략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엄밀하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우리가 UN결의도 얻지 못한 이라크전에 파병을 하겠다는 것은 국익 때문이 아니라 한미동맹 때문이다. 세계가 다 반대하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헌법이 일체의 침략전쟁을 불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원하면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미동맹을 지키는 것이 국익이라면 국익이다. 이라크전 참전과 전후복구의 떡고물이 국익이라면 국익이다.
  이런 국익이야말로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가! 베트남 전이 끝나고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 민중들은 베트남 민중들 앞에 얼마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사죄를 해야만 했던가!
  인류는 마땅히 함께 가야할 길이 있다. 국익보다 더 중요하고 그 중요한 가치를 지켜나갈 때 더 큰 국익으로 돌아오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하는 우리나라 젊은 의사들이 있고 제3세계의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손수 집을 짓고 빨래를 하는 봉사자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 2003년 우리의 현재.
  그 현재적 의미에서 국익은 인류 공동의 선과 이익에 우선할 수 있는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보편적 인간의 권리를 인정했으며 이제 인류는 형식적으로나마 공동선을 추구하는 동반자가 되는가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인권보다 석유가,  전세계적인 약속보다 중동의 패권이 더 중요하다는 노골적인 국익을 드러냈다. 

이제 우리는 이 깊은 상처를 어떻게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책임은 미국에게 있으며 우리나라가 이 불의의 전쟁에 동참한다면 우리 또한 준엄한 인류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