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핵은 조용하다고 했다. 사스가 전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있는 지금 나는 그 불안의 진원지인 중국에 와 있다. 저녁 뉴스에서 중국 당국이 사스 검역과 확산방지를 위해 60억위엔을 들였다는 보도가 나오고 이곳 텐진에도 세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베이징이 휴교조치를 2주간 연장했으니 여기도 그럴 것 같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4월 28일 온 도시가 소독약 냄새로 코를 막고 다녀야할 지경인데도 사람들은 너무나 태연했고 길가에서는 마스크를 한 사람도 잘 보지 못했다. 가히 중국다운 여유라는 생각에 나도 편안해져서 비로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는데 며칠을 지내면서 나는 경제적 수준에 따라 양극화되어 있는 사스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시내 백화점과 고급 식당들은 너무 한산했고 거기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골목 곳곳에는 4∼50명의 장정들이 모여 휴일 한때를 마작과 카드놀이로 보내고 있었고 변두리 주택가의 재래시장이나 골목 어디에서도 마스크를 보기는 어려웠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은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다. 인천공항에서 함께 들어온 사람들은 주머니 가득 달러를 넣고 다니며 면세점 쇼핑에 열을 올렸고 여기 사람들은 월급 1천위엔(우리 돈 15만원) 2천위엔으로 이제 겨우 먹는 문제를 해결했거나 그도 아직 요원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빈부격차는 그것이 상대적일 때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 70년대가 오늘날의 중국같았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지금의 중국처럼 골목마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와 고급 백화점이 있지는 않았다. 2003년의 물질문명과 1970년대의 빈민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이곳 중국의 빈부격차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도 남음이 있다. 재벌(자본가)들이 이미 당 정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그런가 하면 인구제한 정책으로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뒷골목의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1억을 헤아린다고 한다.
사스 이전에도 중국에는 해마다 크고 작은 전염병이 있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번 사스사태는 중국 당국으로 하여금 위생과 공중보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60억위엔을 들여 전국을 이잡듯 소독하고 예방약을 나눠주고 안전교육을 시켰다. 소잃고 외양간고치는 격으로 이미 만리장성을 비롯한 유명 관광지는 텅 비어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중국은 전국적인 검역체계를 정비하고 도시청결과 국민들의 보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산주의는 차별없이 '못 사는' 사회가 아니라 차별없이 '잘 사는' 사회를 향해 달려왔다. 수정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이 역사의 궤적 속에서 우리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는 두고 볼 일이나 나는 중국에 올 때마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보이는 이 빈부격차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자전거 뒤에 손수레를 묶고 연탄을 나르는 아이들과 목에 2천위엔이 넘는 핸드폰을 걸고 맥버거를 먹는 아이들이 함께 커가면서 필연적으로 만들어 낼 사회적 갈등을 진작부터 살피지 않는다면 중국의 경제성장은 허명 뿐인 것이 될 것이며 세계적 제국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의 오만을 응징하기에도 역부족이 될 것이다.
우매한 민중들은 언제나 지도자들의 역사관에 희생당하고 성장논리에 세뇌당하면서 역사적 동력이 되어왔다. 그것은 진정 민중들이 자처한 희생이 아니며 그들이 의식한 역사도 아니었다. 인민의 나라 중국이 인류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진 책무는 여전히 '인민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당장 살아가기에도 숨이 가쁜 사람들에게 사스 때문에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너무나 큰 사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13억 대륙을 갉아먹는 사스균은 도시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고 중국 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