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촛불을 들며
 
상기해보면, 지난 여름은 참으로 뜨거웠다. 월드컵 4강신화와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은 환호와 분노의 전혀 다른 모습으로 거리를 달궜고 이제 1년이 지났다.
월드컵은 연인원 2200만명을 거리응원전에 내세우며 온나라를 열광과 기쁨의 도가니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승리의 기쁨과 국민들의 결집된 힘은 우리 사회에 강한 자신감과 성숙된 시민의식을 심어주었다. 시민사회는 이제 개인으로서의 국민의 힘을 모아 분출할 수 있는 자발적 조직화를 가능하게 했으며 주체적 역량과 성숙함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이렇게 촉발된 시민사회의 영역은 태풍 루사로 이재민이 생기고 사회가 곤궁에 처했을 때 1250억원의 자발적 모금이 가능하게 했으며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1만7천명의 자원봉사자를 조직해내기도 하면서 87년 넥타이부대의 민주화 투쟁에서 나타난 '시민의 힘'을 자발적 참여문화로 완결시켜가고 있다. 
그러나, 효순이 미선이 두 여중생의 죽음으로 시작된 대미인식과 민족성에 대한 자각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지난 여름의 대미인식은 다분히 감정적인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쇼트트랙 편파판정과 장갑차 사건 무죄평결은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했고 전국민적 저항을 낳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으며 불평등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두 여중생의 죽음에 가슴아파 분노하고 있을 때 미국은 군사적 제국주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라크를 침공, 학살했고 북한을 협박했다. 
우리는 이제 80년 광주학살 이후 우리가 던졌던 의문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미국은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때는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대미인식이 감정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이유를 우리는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89년 동구권 몰락으로 체제 장벽이 제거된 이후 미국은 지구제국의 야욕을 드러냈으며 우리나라는 이미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금 세계는 지구화가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그 앞에서 민족적 이익과 일국적 불평등의 해소를 요구하는 것은 일면 후진적인 모습으로까지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한 민족적 자각과 불평등의 해소, 주권의 회복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지구화는 미국만의 잔치가 될 것이며 제3세계 국가들은 더 철저히 소외될 것이다.
지난 7∼8일 이틀 동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6월 난장―오 피스 코리아’는 6월항쟁 16돌과 월드컵 1돌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두 가지를 함께 기념하는 국민축제의 성격으로 마련되었다. 
이는 6월항쟁과 월드컵이, 미선이 효순이 추모와 반전 평화 염원이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 모두는 시민사회의 문제이며 시민사회의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의지와 대안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계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우리가 우리사회의 문제를 감정적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의 보수화와 반동적인 흐름을 극복하고 진보를 지향할 때 우리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제국적 억측의 논리를 극복하고 우리 앞에 놓인 세계화의 주체적인 동력이 되어 인류공영의 열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을 아린 가슴으로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