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해자인가?

  배운 바에 의하면 우리는 백의민족이다. 흰 옷을 즐겨 입고 싸움을 싫어하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또한 배운 바에 의하면 우리는 반만년 역사동안 무수한 외침을 당하고 무수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아름다운 품성을 간직하며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살아왔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를 지배했고 그 뒤를 이어 미국이 우리를 지배했다. 우리는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변 강대국에게 늘 이용당하고 피해를 당했다. 
  어느 사이 우리에게는 피해의식까지 생겨났고 우리는 피해자가 되어있다. 
  '대한민국사'를 쓴 한홍구 교수는 여기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최근 펴낸 '대한민국사 2'(한겨레신문사)에서 1931년 일어난 조선인들의 반중국인 폭동을 통해‘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으로서 ‘당해온 역사’가 아닌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감춰진 ‘가해’의 역사를 뼈아프게 끄집어내어 들려준다.  그가 이야기하는 가해자로서의 우리 역사는 베트남 전쟁 참전과 민간인학살에서 정점에 이른다. ‘피해자 의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가해자’이기도 했던 우리네 자신의 ‘대한민국’을 돌아볼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충격이다.
  민족이 외세로부터 억압당했다면 개인으로서 나는 폭압적인 국가권력으로부터 사회적 편견과 폭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했기에 나는 늘 피해자였고 나는 늘 이 역사와 이 사회에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살아도 된다는 생각이 내 속에 있었기 때문에..그러고보니 언젠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보상 이야기를 하면서 음악 CD를 팔아서 베트남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진정으로 그들의 주장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얼른 그 CD를 다 팔아버렸으면 하는 생각에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가난하고 핍박받던 우리 민족은 어느사이 OECD 가입국이 되었고 국민소득 2만 불을 슬로건으로 내 걸만큼 부자가 되었다. 가난한 나라들을 위한 국제적 지원에 혜택만 받던 나라가 아니라 돈과 인력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며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정서상 한홍구 교수의 말에 선뜻 동의하고 싶지가 않다. "우리는 피해자다!"라고 외치고 싶다. 우리가 당한 피해에 비하면 그건 역사적 우연일 뿐이라고, 우리나라에도 못살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그 사람들을 내버려두고 인도를 돕고 베트남을 돕고 제3세계를 지원하기에는 우리 코가 석자라고 반박하고 싶다.
  그러나 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도 다국적 기업이 있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핍박하고 신부를 수입하고 MD를 이야기하고 어린이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공으로 월드컵을 치뤘다.
  이제 어쩔 것인가? 나도 판단을 해야겠다. 
  우리가 피해자라는 것이 사실이라 할 지라도 우리가 가해자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피해자였다면, 그리하여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왔다면, 현실 속에서 우리는 가해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가해자가 정복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오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에 앞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피해의 역사를 가진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