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아주 통속적이고, 대체로 식상해져 버렸다고 여겨지는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사랑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무조건 봐주고 또 믿어주고, 손잡고 울어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해야하는 것이 그 하나고 끈질기게 싸우고, 걸어 넘어뜨리고, 못 가게 붙잡고, 스스로 자기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이 그 둘이다.

6·13지방선거를 지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안동지역 출마자 중 7명이 전과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동이 다 아는 강간사건의 주범들은 아무런 전과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그것도 모자라 시민들의 대표가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마구마구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성교육 강사 자격으로 소년원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닌 적이 있다.
열 세 살부터 스무 살까지의 아이들이 마치 군대 숙소처럼 꾸며진 방에서 제 나이 또래들과 생활하는데, 강사들이 팀을 이루어 각반의 담임을 맡고 일주일에 하루, 삼 개월 과정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언제나 나는 스무 살 아이들을 만났다. 처음 그 방에 들어서던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문신을 하지 않은 아이가 하나도 없는데 눈을 어디다 두고 이야기를 해야할 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잠깐 쉼 호흡을 하고
"이런 나쁜 놈의 새끼들, 도대체 몸에다 그림을 그렇게 그려 놓으면 선생님이 어디다 눈을 두란 말이냐." 대뜸 큰소리를 쳤더니 삑 돌아앉았던 아이들이 눈길을 가져왔다. 뭐 저런 개 뼉다귀 같은 게 왔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아이들은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선생이란 이름으로 만난다고 했다. 범죄 심리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들, 각종 사회단체 사람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어떤 아이는 '와서 범죄 사실을 꼬치꼬치 캐묻고 옆에 가까이 다가가면 몸을 움츠리고 아주 웃기지도 않는 것들'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나한테 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어쨌든 난 그 고함 덕분에 그 아이들과의 벽트기에 성공했고, 초짜 선생으로 삼 개월 동안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아이들 중에도 강간범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화가 나지도, 막막하지도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해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즈음, 강간을 당해 고소를 한 여자들과 함께 법정에 간 적이 있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주성을 짓밟힌 순간 그들은 한 번 죽었고, 너도 조금은 좋아했으니 가능했을 것 아니냐고 칼날을 들이대는 법정의 분위기에 눌려 또 한 번 죽어 가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했다. 그 법정에 한 번 선 아이들은 다시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도저히 그 질문들을 듣고 있을 수 없다고,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고, 세상이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고, 내가 피해잔데 왜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몇 시간을 울다가 소송을 취하하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 

강간이란 인간사회에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성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동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내려야 하는 죄목이다. 몸이 어떻게 반응했느냐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싫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는데도 그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명백히 유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남자들이 허리 아래로 한일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고, 아직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사랑으로 가자. 
아직 이성이 덜 자란 아이들의 잘못은 무조건 봐주고 또 믿어주고, 손잡고 울어주고, 등을 두드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야할 우리들 몫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선생이 제자를, 사장이 부하 직원을 강간한 그들과는 끈질기게 싸우고, 걸어 넘어뜨리고, 못 가게 붙잡고, 스스로 자기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이 사랑이다. 

법정을 나오면서 동료들과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십대가 저지른 범죄는 교육이라는 벌로 다스려 기회를 주어야 하지만, 도대체 저 나이 들어 인간 안 되는 것들은 여의도 광장에다 달았으면 좋겠다'고. 지금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여러 가지 명함을 가지고 그대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눈감고, 귀 막고 살아가는 한 또 다른 그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모든 잘못은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