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며칠을 졸랐다. 
"엄마, 나 앞머리 잘라도 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도,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을 때도 전화를 해대는 통에 
"그래, 자르는데 엄마가 보기에도 괜찮도록 잘랐으면 좋겠다. 엄마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반 협박을 담아 허락을 했다. 그날 문을 열어 주는 큰아이 머리부터 살폈다. 
"엄마, 괜찮지?" 하는데
"몰라, 엄마 맘에 꼭 들지는 않지만 니가 이쁘다니까 됐지 뭐." 말을 얼버무리고 생각하니 내가 참 한심하다. 마음속에다가
'그냥 싹 빗어 올려 묶어 다니는 게 깔끔하고 훨씬 이쁜데....' 
'저러다가 날라리 소리 듣는 건 아닌가.' 
'내 아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을 담고서 한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아이들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자고 주장하면서 일일이 간섭할 수 없어 수위 조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저께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동학들과 밤참을 먹게 되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 탓에 그런 자리에서도 늘 인생 공부를 하게 되는데
오십이 다 된 언니가
"어떤 선생이 양심 선언을 했는데, '아이들은 다 모자 삐딱하게 쓰고 싶은 때가 있고 그 시간만 지나면 그렇게 쓰고 다니라고 빌어도 안 하는데 그것을 길들인다고 아이들을 때린 자신의 죄를 어떻게 용서받아야 하는가'하는 내용이었대." 한다.
"우리 때 통 나팔바지가 유행이었는데, 어른들이 그거 새마을 바지라고 했잖아. 길거리 청소 다하고 다닌다고, 난 유행도 별로 안 타는데 어째 그런 걸 입고 다녔나 몰라. 그러니 다 한 때라는 게 맞는데......" 언니의 말이 계속 되는 동안 내 이중성이 들켜버린 듯한 당혹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맘보 바지에 교모를 삐딱하게 쓰고 다니던 그 누구도, 애교머리에 치마 단을 올리던 어떤 아이도 지금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다. 소위 깻잎머리를 해 보고 싶어 그렇게도 나를 졸랐던 우리 아이도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어른이 될 것인데 생각하니 
"잘 잘랐네. 이쁘다." 흔쾌히 말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여러 가지 일을 한다고 엄마가 바쁘게 다니느라 아이들을 잘 안 돌봐서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겁났던 것은 아닐까? 나도 역시 내 자식에 대해서는 이기적일 뿐인가? 많은 생각을 했고 반성도 했다. 어쨌든 더 넓고 길게 아이들의 삶을 봐 주자고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추스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과 나는 함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