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었다. 밤늦은 시간,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정규방송이 끝난 시간이라 전에 했던 프로를 재방송하는 채널이 있었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고 보고 있는데 연예인 이미지 투표를 한다고 했다.

여섯 명의 연예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담은 포스트를 가지고 일정한 장소에 가서 무작위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져 그기에 제일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을 선택하게 했다. 좋은 질문이든 나쁜 질문이든 상관없이 다섯 표를 먼저 받은 사람이 그날의 당첨자였다. 
제일 공부 못할 것 같은 연예인은?
여자한테 제일 자상할 것 같은 사람은?
제일 촌스러운 사람은? 질문은 그런 것들이었다. 

하하거리며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호화빌라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시장에 앉아 서민적 모습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자신은 원래가 서민이라며 자신감을 표시하는 민주당 태통령 후보.. 
그뿐만이 아니다. 우체통에 날마다 번갈아 꼽히는 시의원, 도의원 후보에서. 전봇대에 붙어 있는 의정보고회 광고까지 온 나라가 각종 이미지 경연장이다.

연예인은 자기가 맡은 역할에 따라 이미지를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 아님에도 그들은 이미지에 따라 인기도가 달라진다. 그 인기도는 그들의 몸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연기라는 것은 무대에서 그럴싸하게 해 보이는 말이나 행동이고 그것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그들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도 이미지로 승부 해야하는 것일까?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메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주어야 하는 걸까?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정치가는 다스리는 일을 맡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연예인은 애초에 허구의 삶을 아주 그럴듯하게 살아내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인데 반해 정치인은 국민들을 위해 현실의 잘못을 시정하고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여튼 요즘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각종 정치인 바겐세일』이란 말이 떠오른다. 포장만 그럴듯하게 하면 그만인 사람들이 선거라는 상점에 주렁주렁 걸려 어떻게든 팔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이런 정책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선전 문구는 어디에도 없다. 
선거 철이면 터지는 대통령과 그 아들들의 비리. 서로의 허물을 까발리며 뿜어내는 말 말 말....
그리고 그것들을 따라 보도에 열을 올리는 언론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다. 국민들이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 누구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본질에 관계없이 이미지로 승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를 그들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선거 철이면 언제나 되풀이되는 것임에도 늘 처음 당하는 것처럼 절망하고,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뭐 하나' 무기력에 빠져 똑같은 물건을 산 우리들을 되돌아 봐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바겐세일하는 물건을 충동 구매할 것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사야한다. 그런 물건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런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포장만 그럴듯하게 해서는 더 이상 자신을 팔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자신이 연예인인지 정치인인지 구별하지 못해서 이미지 만들기에만 열 올리는 사람들이 발붙일 곳은 없을 것이다. 또한 적당한 수위로 자구책을 강구하는 언론들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주체로서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획을 그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