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厓 유성룡 선생 기리는 안동 병산서원의 배롱나무 군락 
 
글 사진=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의 여름을 생각하면, 옛날 글공부하던 유생(儒生)들의 공부가 단순히 방안에 틀어박혀 글만 읽는 멋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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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의 여름은 이 땅의 여름을 가장 화려하게 물들이는 배롱나무 꽃이 피어나면서 시작된다. 서원의 입구인 복례문 앞 진입로 양쪽에 줄지어 선 배롱나무를 시작으로, 병산서원 건축의 백미라 하는 만대루 앞, 강당인 입교당 뒤란, 그리고 존덕사 입구 등에서 만나게 되는 한여름의 배롱나무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배롱나무 군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군락에 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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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전념해야 할 서원 건축을 이토록 아름다운 꽃 대궐 한가운데 지었다는 것은 당시 유생들의 공부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한 측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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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는 여름에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해서 백일홍나무라 부르던 것이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배롱나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변한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해, 열흘 붉은 나무가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배롱나무는 여름이 시작될 즈음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늦여름까지 붉게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여름꽃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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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방으로 골고루 넓게 퍼지는 가지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줄기의 매끈한 표면이 아름다워 정원수로 더 없이 환영받는 아름다운 나무다. 우리나라의 일부 지방에서 부르는 ‘간지럼나무’라는 별명이나, 일본에서 부르는 ‘원숭이미끄럼나무’라는 별명은 모두 배롱나무의 매끈한 줄기 표면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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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병산서원은 다른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배롱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자라는 곳으로 손꼽을 수 있는 옛집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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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병산서원은 국내 건축 답사지로는 손꼽히는 아름다운 서원건축의 하나다. 하지만 건물 그 자체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은 매우 평범한 건물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럼에도 병산서원이 눈길을 끄는 까닭은 바로 자연을 건축물 안에 통합시킨 솜씨가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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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의 대표적인 건물인 만대루(晩對樓)는 서원 내부에서 바깥 풍광을 내다보는 이른바 시각적 틀이 된다. 만대루는 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맞은편에 병풍처럼 둘러친 병산의 아름다움을 서원 내부로 끌어들인 서원건축의 꽃이라 할 만하다. 바로 이 만대루 안쪽으로 들어서면 병산서원의 중심 건물인 입교당 마당에 들어서게 되는데, 마당의 밋밋함을 해소하고 풍치를 돋보이게 하는 나무가 한 그루 눈에 띈다. 무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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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심은 나무겠지만, 주변에 여름에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무성한 서원 마당에 알맞은 나무로 무궁화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무궁화는 나라꽃인 까닭에 때로는 주변 환경에 잘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도 마구 심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병산서원 앞마당의 무궁화는 주변 환경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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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들이 꽃을 화창하게 피우고 있는 동안 서원 안마당의 나무 또한 주변 배롱나무에 어울릴 만큼의 꽃을 피워야 제격일 것이다. 여름 내내 배롱나무처럼 꽃을 피우는 나무로는 무궁화만한 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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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 마당의 무궁화는 그렇게 주변의 무성한 배롱나무들 한가운데 자리잡고 서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곳의 무궁화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배롱나무들이 서원 안팎에서 꽃을 피우는 동안 서원 마당 한가운데서 배롱나무에 질세라 꽃을 피우는 무궁화 한 그루는 절묘한 조화로 이 여름을 보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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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바탕으로 이뤄진 우리네 옛 건축의 아름다움은 여름날 병산서원에 활짝 피어난 배롱나무와 무궁화 꽃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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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을 찾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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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풍악서당 시절, 유성룡이 ‘읍내 도로변은 공부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며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당시 유성룡은 풍산읍에서 좀 떨어진 병산리를 공부하기 좋은 곳으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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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을 빠르게 가려면 중앙고속도로의 서안동 나들목을 이용해야 한다. 서안동 나들목에서 예천 방면으로 난 34번국도를 이용해 2.5㎞쯤 가면 하회마을로 가는 916번지방도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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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로를 타고 다시 7㎞쯤 가서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을 이용하고, 다시 1㎞쯤 간 뒤 효부골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병산서원을 품고 있는 화산(花山) 고개를 넘는다. 왼쪽으로 낙동강을 끼고 도는 제법 운치 있는 이 길을 3㎞ 남짓 가면 병산서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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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을 둘러본 뒤, 다시 산길을 돌아나와 앞서의 효부골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2㎞쯤 가면 하회마을이다.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