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화합 상징 신품종 ‘삼천리’의 어미 나무 
 
글 사진=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무궁화는 어쩌면 나라꽃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가까이 하기 어려워진 나무가 아닌가 싶다. 하나하나의 꽃을 있는 그대로 보자면, 더 없이 아름다운 나무다. 뿐만 아니라 한여름 내내 붉은 꽃을 피우는 귀한 여름꽃나무여서 사랑받을 까닭도 충분하다. 그러나 국가 행사 같은 관례적인 일에 많이 동원되는 꽃이라는 점이 무궁화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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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무궁화는 우리나라 토종 나무가 아니다. 언젠가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적당한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무궁화의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점은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무궁화의 고향은 중국이다. 물론 무궁화는 아주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잡고 살았기 때문에 굳이 고향을 들먹이는 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안에서 나라꽃인 무궁화의 자생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못내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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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연구와 품종 개량 등은 해방 이후 계속돼 지금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무궁화의 품종은 무려 100여 가지나 된다. 그 가운데 ‘안동’이라는 품종의 무궁화가 있다. 바로 경상북도 안동 지방의 지역 이름을 딴 무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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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무궁화 품종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나무는 안동 도산서원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다. 그냥 스쳐지나기 십상인 작은 향교, ‘예안향교’ 앞마당이 그곳이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 살아 있는 무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100살이나 된 고목(古木)이다. 물론 은행나무나 느티나무처럼 수명이 긴 나무에 비하면 무척 어린 나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무궁화로서는 고목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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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나무는 꽃을 한창 피웠던 지난해 여름, 신품종 무궁화 ‘삼천리’를 탄생시킨 어미 나무로 일반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삼천리’는 전북 남원에서 자라는 무궁화 ‘남원’과 경북 안동에서 자라는 무궁화 ‘안동’을 꽃가루 교배해 만든 영호남 화합의 무궁화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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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재래 품종인 예안향교 무궁화는 흰색 꽃잎에 붉은 속살을 가진 자그마한 꽃을 피운다. 숱하게 많은 다른 무궁화 품종들 가운데 단연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꽃을 피우는 나무다. 무궁화는 전통을 중시하는 향교나 서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예안지역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던 예안향교에서도 이 무궁화를 만날 수 있다. 안동의 예안향교는 조선 초기인 15세기 후반에 처음 생긴 이래, 선조 34년(1601년)에 개·보수를 거쳐 오랫동안 이 지역의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향교의 역사에 비춰보면, 무궁화 ‘안동’은 예안향교가 생긴 뒤 누군가 한참 시간이 지나 심은 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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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의 나이는 100살쯤으로 추측된다. 아마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하던 때 이 향교에서 공부하던 한 유생이 민족 혼과 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심은 나무인 듯싶다. 이때부터 이곳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은 향교에 드나들면서 재래종 무궁화를 자연스레 눈에 담게 됐을 테고, 이 한 그루의 작은 무궁화 나무는 그들에게 민족 혼을 되살릴 수 있는 씨앗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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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면을 품고 있는 안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儒學) 도시다.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 도시라 할 수 있다. 이육사 같은 민족시인의 고향이 안동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안향교의 무궁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서도 민족 혼을 생각하던 옛 사람들의 말 없고도 은근한 자존심이 바로 안동 자존심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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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향교는 지금은 찾는 이가 적어 비교적 한적한 문화재에 속하는 작은 향교다. 그러나 이곳 대문 앞에서 수백년의 세월을 버티고 살아온 은행나무 한 그루와 함께 대성전 앞의 오래된 무궁화 ‘안동’은 언제까지나 변함없는 민족의 향기를 담고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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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예안향교를 찾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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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향교는 도산서원을 찾아가는 길에 함께 들러보면 좋다. 사시사철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도산서원과 달리 예안향교는 안동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발길을 멈추는 이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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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향교는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 방면으로 약 20㎞ 떨어진 서부단지에 있다. 이 길은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이어서 대부분의 안내판은 도산서원을 가리키고 있다. 때문에 예안향교를 알리는 팻말을 놓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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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시내를 빠져나가면서 와룡면을 지나 안동댐의 예안교를 건넌 뒤 속도를 늦춰 1㎞ 남짓 들어가면 오른쪽 길가에서 ‘예안향교’ 안내판을 찾을 수 있다. 향교 앞까지 자동차가 접근할 수는 있지만, 급한 경사를 곤두박질치듯 내려가야 하니 조심해야 한다. 도로 가장자리에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다. 주위를 잘 살피고 자동차를 세운 뒤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