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생명살림천지굿 여덟번째 민족통일대동장승굿



생명을 살리는 길이 곧 합일의 길일지니




  21세기를 맞이하고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 것인가. 수많은 희생 속에서 이루어낸 민주와 평화라는 것이 고작 이러한 모습이었던가를 되새기게 하는 시절이다. 등굣길 혹은 출근길에 봉변을 당한 대구지하철참사의 고운 넋들이 여전히 한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고, 통일의 모습이 곧 보일 것만 같았지만 여전히 반통일세력들에 의해 민족의 미래가 농락당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초상은 어쩌면 우리를 서서히 무기력의 늪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3 생명살림천지굿’과 ‘여덟 번째 민족통일대동장승굿’은 자못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지역의 문제를 생명살림천지굿이라는 민족예술대동굿의 형식을 통해 풀어나가고, 민족의 문제를 각 지역이 주체가 되어 민족통일대동장승굿으로 엮어나가는 과정은 우리의 민족적 형식과 민중적 내용을, 현실이라는 시공간과 한 호흡으로 이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우리 굿의 전통을 현대적인 역사맞이굿, 민족예술대동굿 등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민족미학의 발전적 모델을 실험하고 정착시켜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과 지역을 민족예술을 통해 그물망으로 엮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먼저 2003 생명살림천지굿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는데, 초청 예술인들의 노래와 춤 공연이 연행되었고, 다음으로 김금화 무당이 주관하는 망자들을 위한 진오귀굿이 펼쳐졌다. 예술인들의 노래와 춤이 끝난 후 벌어진 진오귀굿은 안타까운 참사를 빚어낸 대구 중앙역 현장으로부터 넋을 건져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구 경상감영공원에서 벌어진 이날의 굿판에는 대구지하철참사대책위원회 분들과 수많은 대구시민, 대구시민과 함께 하고자 하는 온 국민들의 염원이 동참했다. 

  진오귀굿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행되었다. 신청울림, 본향거리, 혼맞이굿(청혼굿-지하철 중앙역 현장으로부터 영혼을 굿당으로 모셔옴), 초부정굿, 영정물림, 칠성제석굿, 영실대감, 열수왕굿, 군웅굿(굿당의 닭을 지하철 역 앞으로 가져가서 닭의 목을 따고 피를 냄-이는 대주대명으로서 죽은 자를 대신하여 피를 보임으로써 천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임), 사자얼름, 망제대잡기, 맑은 혼신맞기, 대감놀이, 수왕천가르기, 서낭굿, 조상굿, 김금화의 작두타기, 마당굿(거리굿) 등의 굿거리이다.

  큰무당(황해도 지역에서는 ‘만신’이라고 부름) 김금화 만신이 망자들의 넋이 되어 가족들과 해후를 나눌 때, 베를 가를 때와 작두를 탈 때 등에는 그 자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망자들의 한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대구시민들의 공감 속에서 함께 이루어낸 이날의 굿판은 공동체 내에 생긴 결손을 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굳건하게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대구 시민들은 중앙이나 지역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자신들의 힘으로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 있음을 다짐할 수 있었고, 정부로 하여금 올바른 사후대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하였다.

   다음날 벌어진 여덟 번째 민족통일대동장승굿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구시민들의 정겨운 쉼터인 비슬산 자락 앞산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술렁이는 풍물소리와, 우람하게 창조된 ‘생명살림여장승’과 ‘민족통일남장승’, 비록 막걸리와 돼지고기, 김치 등이 전부였지만 함께 모인 사람들의 마음만으로도 푸지게 만드는 잔치음식들은 그야말로 대동의 한자리로서 손색이 없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전 홍보와 대구인력들의 소극적인 참여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인원 약 1500여명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참여한 인원은 500여명 남짓이었다.

   산신제를 올리고 허운스님이 고축문을 아뢰었다. 장승을 태울 가마를 제작하였고 이내 장승이 좌정할 곳으로 이동했다. 다른 때보다 훨씬 크게 조성된 장승과 적은 인원으로 인해서 장승들이 함께 올라가지 못하고 남장승 먼저 올리고, 다시 내려와서 여장승을 옮겨야 했다. 50여명이 함께 들어야 하는 장승가마에는 장정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달라들어 손 하나라도 거들었다. 앞에는 수십개의 만장과 풍물패의 흥겨운 가락이 울려나고, 가마를 메고 가는 이들은 선소리꾼의 메기는 소리에 맞추어 뒷소리를 받아내면서 장승을 무게를 잊었다. 두 번의 이동을 힘겹게 끝낸 후 점심공양을 하고 드디어 장승을 세웠다.

  미리 파 놓은 자리에 장승을 세우는 데 수십명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포크레인과 지게차까지 동원되었다. 생명살림과 통일에의 의지를 대구시민들과 함께 공고히 하는 자리였기에 계층이나 종교, 연령 등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10대 학생부터 70대 노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합심해서 장승을 옮기고 돌을 날랐으며, 한판 대동의 축전을 벌여냈다. 특히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영산삼일문화제 보존회 여러분들께서 직접 오셔서 일손을 도맡아 해주신 것이다.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마음과 민속을 전승하는 마음이 하나로 일치해서 연배가 상당한 분들이었지만 직접 몸으로 장승굿에 필요한 주요한 일들을 돌보아 주셨다. 장승굿을 매개로 한 지역적인 연대의 기반이 확인되는 자리였다.

  장승고사에 신부와 스님이 나란히 절을 올리고, 행사장 주변 대구시민들은 장승을 세우면서 버팀줄로 썼던 광목을 손수건 크기만큼씩 품에 안고 민족통일과 대구시민들, 그리고 가내의 평안을 기원했다. 여기에 배김새의 오방춤(오방의 토지신을 놀리는 춤)과 통일을 염원하는 남녀의 대무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마지막에는 통일비나리와 함께 지경을 다지면서 한판의 난장을 이루면서 대미를 장식하였다.

   그렇지만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전국적인 행사라 하더라도 해당 지역의 주민들과 문예인력이 주체로 서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이끌어냈어야 했는데, 이러한 과정이 다소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대구지역 주민들과 문화인력을 대대적으로 참여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의 합일과 각 지역마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연대의 조직화가 더욱 절실한 과제로 다가온다. 민족통일의 씨앗과 생명살림의 자궁을 심어가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더욱 발전된 민족예술대동굿의 내용과 형식을 창조해나가는 작업 역시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