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에 다녀왔다.

문부성 산하 청소년교우협회 주관으로 열린 세계야외민속놀이 학술대회와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정작 내 관심은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었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도쿄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조국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군데군데 잘리고 칼자국 같은 상처가 난 모습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했다. 무분별한 산악도로와 산허리를 잘라내는 아파트개발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본, 결코 쉽게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 없는 나라이다. 지금 고백하건대 일본에 가 있는 일주일동안 내 심정은 거의 적진에서 활동하는 스파이? 같은 것이었다. 세계 대표들로 이루어진 참가자들 중에는 내가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미국, 이스라엘, 중국, 러시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계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깡패짓을 서슴지 않는 미국, 그 미국을 안팎으로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타종교인들을 괴롭히는 이스라엘, 아시아의 중원이었던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자 주변국가들에게 끊임없이 압력을 가하는 한편 소수민족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 체첸의 독립을 끝끝내 거부하면서 잔인한 테러와 학살을 일삼는 러시아... 나는 바로 그들과 일주일을 함께 동고동락했다. 거기다가 내가 방문한 나라가 다름아닌 일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적진에서의 일주일은 너무나 평온했다.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사람으로서 일본인, 중국인, 러시아인, 이스라엘인, 미국인 등은 그저 하나의 또다른 인격체일 뿐이었다. 그들과 함께 서로의 서투른 영어 실력을 서로 감싸안으면서, 또한 전통적인 아이들 놀이문화를 다시금 되살리고자 열띤 토론과 실연을 주고받으면서 보낸 일주일은 인류에 대한 희망을 그래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앞으로 방문해야 할 나라들이 더욱 많아졌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나라에서는 만 3년 즉 세 돌까지가 유아관련 의례의 전부인 반면, 일본에서의 사정은 썩 다른 것이었다. 일본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신사에 가서 신고를 하게 되고, 3살, 5살, 7살에 계속 신사에 방문해서 일본 국민으로 길러진다. 이때의 의례는 아이가 무사히 성장해서 일본의 진정한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고 부모님과 함께 신사를 방문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릴 때부터 심어지는 일본문화의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의 마을에는 거의 대부분 두 개의 의례공간이 존재한다. 하나는 신사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절이다. 한국의 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일본의 절은 주로 상장례와 관련되어 있다. 한 일본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는 신사에 가고, 죽어서는 절로 간다"

일본인들은 삶과 죽음의 의례공간을 모두 마을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 도심지로 변해가는 마을 같은 경우에는 마을 한복판에 죽음의 공간인 절이 자리잡게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사찰은 신앙의 공간이기보다는 공공시설 같은 것이다. 또한 일본의 신앙에서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기독교의 전파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기독교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놀랐다고 한다. 

한번은 신주꾸 거리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기독교도들을 보았는데, 거의 한국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표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거리 선교가 너무나 진지하고 절박한 상황이 역력히 배어나는 반면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고 즐거워 보였다. 어찌 보면 애교 있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들의 선교 모습은 그저 신주꾸 거리의 여러 풍경들 중 하나였다. 

3, 5, 7세 때의 일본 아이들의 의례는 신사에 근무하는 사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상당히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아이들에 대한 사제자들의 축원이 이루어지며 아이들도 나름대로 진지한 표정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부모들은 곁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저 일본에 사는 일본인이 아닌 진짜 일본인으로의 거듭나기가 이루어지는 일본 아이들의 753 의례는 오늘날의 일본이 있게 만든 강력한 문화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 위 사진은 일본 나가노현 스와타이 신사에서 찍은 것이며 멀리 뒤쪽에 753의례등록을 받는다는 간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