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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조정현       작성일 : 2003-04-30 오전 10:33:41 조회 : 3323
  6 3대째 내려오는 세습무의 전통-동해안별신굿 송동숙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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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내려오는 세습무의 전통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3호 동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송동숙 옹)



우리 신앙의 뿌리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단연 “무속”을 꼽을 수 있다. 한때 미신으로 치부되어 우리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할 것으로 왜곡되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무속인들은 꿋꿋이 전통을 이어가면서 인간세계와 신의 세계를 이어주는 사제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불교와 도교, 유교와 기독교 등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지만 무속의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무속의 전통은 불교, 유교, 기독교 등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국적인 유교, 한국적인 불교, 한국적인 기독교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서 자기 수양과 공동선의 성격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분히 기복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정성을 들인 만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의식이 강해서 새벽기도, 철야기도, 100일 기도 등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송동숙 옹은 현재 7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굿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장구 솜씨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면 서러울 정도로 특출한 것이라고 자타가 인정한다. 동해안별신굿 무계(무집단, 무업을 행하는 팀)는 크게 두 갈래인데, 그 둘 중 한 패의 대표가 바로 송동숙 옹이다.

그는 9살때부터 굿판을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징을, 조금 뒤엔 바라(제금)와 꽹과리를, 17세 경부터는 무속 음악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장구를 연마하게 되었고, 23세부터는 독립적인 무악 연주자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후 50년이 넘도록 동해안 이곳 저곳으로 굿을 하러 다녔다. 

이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양중(남자무당, 화랭이, 무격, 박수) 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 무당들은 무업을 전업으로 할 수 없었다. 굿이 없을 때에는 농사를 짓고, 굿이 요청되면 굿판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척박한 갯가의 삶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안다. 또한 어제 배타러 나갔다가 오늘은 망자가 되어 오는 뱃사람들의 어려움도 잘 이해하여 이를 고스란히 오구굿(망자를 위한 굿)에 담아내 왔다.

이제 동해안 지역 왠만한 곳에서는 그를 대부분 안다. 또한 인간문화재로 지정이 된 이후로는 민속예술인으로서 자부심도 대단하다. 천대받던 무당패에서 이제는 뭇 예술인들과 지역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3대째, 그리고 딸과 사위가 잇고 있는 4대가 지나면 동해안별신굿의 맥은 끊어질 거라며 고개를 떨군다. 물론 동해안 무속음악을 익혀서 전수하는 음악적 전승은 이어지겠지만, 더이상 동해안 지역에 살을 묻고 지역사람들과 함께 살아나가면서 사제자의 소명을 감당해낼 무당은 없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하루속히 체계적인 전승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와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asdf()adsf2005-05-02 오후 3: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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