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 동포들의 굳건한 삶과 갈 수 없는 북녘의 땅


  지난 8월 15일부터 23일까지 지금은 중국땅으로 되어 있는 연변지역을 다녀왔다. 꿈에도 설레이던 백두산과 장백폭포, 몇 발자국만 강을 건너면 닿을 수 있는 북녘땅, 그리고 그곳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못내 설레임을 감추기 힘들었다. 우리는 먼저 심양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연길로 향했다. 조선족자치구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연길시는 최근 무서운 속도로 자본주의화되고 있었다. 웅장한 규모와 현대적 감각을 뽐내며 건설되고 있는 수많은 빌딩들과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수입된 다양한 자동차들, 길거리에 넘쳐나는 노점상과 자전거, 그리고 바쁜 듯 움직이는 인파들 속에서 자본주의는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다.
  이처럼 변화되는 중국사회에서 조선족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과연 그들에게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있는지, 자신의 조국을 어디로 생각하는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켰다. 많은 의문들은 실제로 안도현 홍기마을에 가서 동포들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풀릴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들은 활기에 넘쳤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어두운 그림자나 냉소적인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두매진 산골로 답사를 갔을 때 만나게 되는 그런 순박한 농민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들을 환영하는 춤판을 벌일 때에는 꿋꿋이 살아 있는 조선족 동포들의 삶의 신명을 느낄 수 있었고, 평균 연령 50세가 넘는 부녀자들의 춤이 그렇게 자연스럽고 행복해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들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느낌이 섣부른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해나가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하고 해왔던 것이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서 조선족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니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남북한의 동포들을 만나면 두 개의 갈린 조국의 일원이 되었다가도 일상인이 되었을 때는 이내 자신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중국의 인민이 되어야만 했다. 

  12억 중국 인민 중 5백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조선족들의 삶이 그리 녹녹치만은 않았을 것임을 자연스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조선족들이 현재의 연변 만주 지역에 이렇게 뿌리박으며 살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 스스로의 개척한 피땀의 역사가 숨어 있었고, 이러한 사실들이 어느 정도 중국사회에서 인정되었다고 한다. 즉, 일본 제국주의와 전쟁을 벌일 때에도 수많은 동포들이 항일무장투쟁에서 산화하였고, 인민정부의 건설 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고 한다. 중국 내 많은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세워진 자치구가 바로 조선족자치구였음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역사는 노래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과 해란강이 여전히 굳건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홍기마을에서 환대를 받으며 놀란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 중국식과 한국식이 결합된 음식 문화이고, 둘째, 독특한 술자리 문화이며, 셋째, 연령을 기준으로 한 서열체계가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었다. 중국식 식탁 구조에 한국적인 음식들을 섞은 형태의 음식은 너무나 푸짐하고 기름졌다. 또한 그들이 권하는 “빠이주(백주)”는 40도짜리 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몽땅 냅시다!”(요즘 우리식 표현으로 “원샷”)를 연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벌게지면서 단 몇 순배에 아주 친밀한 느낌을 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모습 속에서 유교식 연령서열제는 상당부분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한족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우리와 같이 연령서열을 크게 중시하지 않았다. 중국식 생활습관이 상당히 침투해 있는 부분이었다.


백두산이라 부를 수 없는 백두산과 천지의 신비로움

  난생 처음으로 백두산을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왠지 석연치 않았다. 우리가 백두산이라 부르는 산을 그들은 굳이 장백산이라 부르고 표기했다. 뿐만 아니라 백두산을 중국의 영산이라 주장하기 위해 백두산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장백산이라 부르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백두산을 백두산이라 부를 수 없는 중국 내 조선족들의 상황에서부터 그들의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발해왕유적지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사진촬영이 전면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발해가 한국의 역사였음을 입밖에 낼 수 없게 하였다. 중국정부로서는 이 일대의 지역이 과거 고구려와 발해 땅이었음을 인정하기 싫어 내린 정책이겠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백두산 인근의 곳곳은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백두산의 입구를 통과하면서 우리를 안내해주던 연변대학 교수는 “여기서부터는 무조건 돈을 길에 깔구 다녀야 된다”고 하였을 정도로 철저히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백두산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마구잡이 관광개발로 얼룩지고 있었으며, 천지에 올라가서는 태극기도 펴지 못하고 여기가 우리땅이라는 말도 하면 안 된다는 말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천지를 눈앞에 대했을 때에는 모든 것을 잊고 그 감격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천지의 장관은 사진으로 자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감동했으며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지대의 고르지 못한 일기로 인해 천지를 환히 볼 수 있는 시간은 보통 10-20분을 넘기지 않기 때문에 나는 미친 듯이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 그 때의 감동을 눈과 마음과 사진기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내가 평소 생각했던 여러 가지 소원들을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꼭대기 천지에서 그렇게 빌고 또 빌었다.
  천지에서 내려와서는 장백폭포에 갔다. 장백폭포 인근에서는 자연 온천수가 흘러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냇가에서 온천욕을 즐기기도 하였고 뜨거운 온천물을 이용해서 달걀도 삶아 먹었다. 그 맛이 어찌나 꿀맛인지 선 자리에서 3개씩을 까 먹고 아쉬움을 달래며 내려왔다. 이렇게 땀을 흘린 뒤 장백폭포 아래에 즐비해 있는 온천탕을 찾았다. 여기서 나는 평생 처음으로 야외 온천탕에 들어갔다. 멀리 중턱에 있는 장백폭포를 바라보며 즐기는 온천욕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마음만 건널 수 있는 삼합진과 회룡 사이의 다리

  삼합진이란 곳엘 갔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하여 삼합진인 이곳에서는 북한의 회룡시가 한눈에 보였으며, 두만강 넘어 북한의 산하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조금만 더 상류쪽으로 올라가면 강폭이 좁아져서 불과 서너 발자욱이면 북한땅에 닿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삼합진과 회룡을 잇는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중국군인이 총을 들고 가로막고 있었고 사진촬영도 할 수 없다고 위협했다. 허가증을 내밀며 그 다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초소가 없는 한적한 강변도로를 달려왔는데, 두만강 너머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북녘동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중에서도 몇몇은 완강하게 이리 오라고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갑자기 눈물이 울컥 솟았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손짓만 하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삼합진에서의 북녘땅과 만남은 끝나가고 있었다.


북한 직영식당 ‘두만강’에서 아쉬움을 달래며

  연길 시내에는 북한에서 직영하는 식당이 두 군데 있다. 우리는 두만강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남남북녀의 북한 여성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 “접대원 동무”로 불리는 그들과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반갑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환히 미소짓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쉽게 한 핏줄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으로 삼합진에서의 아쉬운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다.

  중국 조선족에게는 세 개의 조국이 있다. 중국이라는 현실의 조국과 하나이길 바라는 남북한 두 개의 조국 말이다. 그들은 남한을 한국이라고 부르고 북한을 조선이라 부른다. 한국과 조선 그 두 어휘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연변 조선족 동포들의 삶을 잠시나마 살피면서 어서 통일이 되어, 연변을 발판으로 우리의 문화가 드넓은 세상으로 활짝 열려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