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종택에서 이어집니다.)

- 오천문화재단지

오천문화재단지는 안동시내에서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습니다.
원래 예안군 외내(한문으로 하면 烏川)에 있던 광산김씨 종가 등이 안동댐으로 인해 수몰위기에 처하자 옮겨 복원한 것이 오천문화재단지입니다. 
오천을 '군자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퇴계의 제자 중 한분인 한강 정구선생께서 오천에 사는 광산김씨들이 모두 군자와 같다고 한데서 연유한다고 합니다. 
외내에 살던 광산김씨는 광산김씨 중 (大派)양간공파, (中派)밀직부사공파, (小派)예안파입니다.

'延李光金'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연안이씨와 광산김씨가 조선의 명문가임을 나타내는 말입이다. 왜 이 두 성씨가 명문인가하면 조선시대는 학문을 숭상하는 사회였던 만큼 벼슬에서도 정승보다 학문적으로 최고의 자리인 '대제학'('문형'이라고도 함)을 더 높이 쳤는데, 이 두 집안이 대제학을 가장 많이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광산김씨의 스타는 율곡의 수제자인 사계 김장생입니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혼란한 사회상이 禮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예학을 집대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의 소견으로는 과연 그것이 정확한 진단인지는 의문입니다. 전쟁의 와중에 수 많은 사람이 죽고, 경제적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한 것인데, 그렇다면 이를 바로잡자면 먼저 경제기반의 복구와 민생 안정의 방도를 모색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었을까요?
마치 환자가 금방 죽게 되었는데 의사의 처방이 '네가 평소에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은 격이 아닌지...)

*참고 : 사계 김장생이 서인의 대표적인 예학이론가라면, 동인에서는 우복 정경세선생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복 정경세선생은 서애 류성룡선생의 제자로, 퇴계선생의 손제자 중 가장 학문이 뛰어난 분이라고 합니다.

광산김씨가 명문으로 떠오른 것은 사계 김장생에 이어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이 서인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어 그 문하에서 송시열 등 쟁쟁한 서인의 학자를 배출하고, 사계의 또다른 아들 김반의 후손 중에게서는 우리가 잘아는 서포 김만중(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저자)을 포함 7명의 대제학이 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광산김씨는 안동김씨와 더불어 서인 및 노론을 대표하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예안 외내에 살던 광산김씨 예안파는 위에서 말한 사계 김장생과는 고려조부터 가계를 달리하는 집안입니다. 즉 광산김씨 5대 大派인 양간공파(15세)까지는 같으나, 시조로부터 17세에서 가계를 달리하는데(즉 中派가 다른데), 사계집안은 둘째인 판군기감사공파이고, 예안파는 다섯째인 밀직부사공파입니다.

* 유홍준교수의 '~ 답사기'에서 여기 광산김씨가 노론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정확한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상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안파는 김장생의 후손('문원공파'라고 함.)과는 가계상 거리가 매우 멀고, 예안파 입향조인 김효로의 손자들인 김부인, 김부필, 김부신, 김부의, 김부륜 등이 모두 퇴계선생의 문인으로 이들의 학문적, 정치적 입장이 서인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즉 퇴계선생의 문인은 대체로 동인 및 남인이지요.)
즉 동인과 서인이 대립하기 시작한 선조때 이후 김장생의 후손들이 서인 및 노론임은 명백하나, 예안파는 동인 및 남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제가 가장 강렬히 인상받은 것은 그곳에 잘 보존되어 있는 한옥이 아니라, 넓은 공터 한 가운데 심어진 느티나무 앞에 있는 작은 표석의 글귀였습니다.(이곳 문화재에 대한 평은 유홍준교수가 '~ 답사기'에서 매우 잘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수몰된 마을에서 가져온 느티나무 한그루를 이곳에 심으면서 세운 표석이었습니다. 느티나무는 광산김씨 예안파의 상징수였다고 하거니와, 그 작은나무 한그루를 통해 조상의 숨결과 정신을 후손에게 전하려 하는 뜻이 자못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에 그 全文을 옮겨 적으며 7편을 마치고자 합니다.

- 해와 달, 별자리를 겨냥하자 -
(군자리 상징수 느티나무에 부쳐)

이 자리에 선 사람들아, 고개를 들자, 그리고 바라보자. 이 나무는 나무이면서, 역사이며, 정신이다.
그 아기 무렵에 이 나무는 광김 반천년 세거의 땅인 외내에서 태어나 우리 고장에 창랑의 변이 있자 창황한 이삿짐 갈피에 담겨 여기에 식수되었다.
본래 이 나무의 족속인 느티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경천숭조의 상징으로 삼아 오신 것, 오랜 세월 우리 할아버님과 할머님들은 이 나무와 더불어 조상을 받들고 아들딸 기르며 산천초목, 천지만물을 가꾸고 섬기는 나날을 살아오셨다.
우리는 그런 옛분들의 핏줄이요, 줄기요, 가지며, 잎새일 따름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새삼 이 나무 앞에서 옛일을 되새기며 새날을 열려는 뜻을 세워야 한다.
여기 선 이 느티나무처럼 튼튼하게 뿌리를 대지에 뻗고 끊임없이 하늘을 우러러 해와 달, 별자리를 겨냥하는 기상과 슬기를 익히고 다져나가자.
1998. 10. 1
글 김용직
광산김씨 예안파 숭원회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