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과 안동 하회마을 
 
조선조 중기의 뛰어난 재상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은 문장가, 유학자, 군략가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수급 바둑 실력자로도 고명한 인물이었다. 경상도 안동군 하회마을에서 출생하여 총명하게 자라더니 10세 전후에 벌써 사서(四書)를 통달하고 25세 되던 명종(明宗)12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상주목사(尙州牧使), 예조판서, 성균관 대제학(大提學), 이조판서 등의 요직을 거친 다음 49세 되던 선조(宣祖) 23년에 우의정,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때에는 좌의정으로 도체찰사(都體察使)를 겸임하여 국난극복의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서애는 정치 수완 못지 않게 바둑실력도 당대의 국수(國手)로 지칭되었을 만큼 최고수였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대국했던 기보(棋譜) 한 편도 후대까지 전수된 것이 없어서 그의 기력(棋力)에 관한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의 바둑에 얽힌 재미있는 야화 몇 가지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서애가 바둑에 조예가 깊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안동은 서울의 2.5배, 제주도의 85%의 면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조선 후기의 인문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이 고을의 어느 곳에 가더라도 기와집과 초가집의 구별 없이 어디서도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1천 년 관향(貫鄕)이 되어온 안동의 저력을 잘 나타낸 말이라 할 수 있다. 안동은 또한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안동 장씨의 1천 년 관향으로 남아오며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온 인물들을 배출한 곳으로서, 한국적 전통이 가장 잘 남아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안동시의 자랑인 풍천면 하회마을은 1984년 중요 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된 국유(國有) 민속(民俗)마을로서 넓이는 160만평에 이른다. 낙동강이 태극 모양으로 돌아 흐른다 하여 '하회(河回)', 혹은 '물도리동'이라 하며 풍수지리상 태극형(太極形), 연화부수형에 속하는 영남의 길지(吉地)에 속한다. 조선 초 공조전서를 지낸 유종혜(柳從惠) 선생이 풍산에서 하회마을로 터를 잡은 후 풍산 류씨가 600여년간 세거(世居)해 온 동족부락으로 조선 중기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시 영의정으로 국난극복에 큰 공을 세운 서애 류성룡 선생 형제분으로 인해 마을이 널리 알려졌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상류층의 기와집에서부터 민가의 초가 토담집에 이르기까지 전통고가와 민속이 잘 보존되어 있다. 294동(와가 93, 초가 126, 기타 75)의 건물에 인구는 107세대 231명(남 101, 여 130)이고 하회탈(제121호), 징비록(懲毖錄-제132호)등 국보를 포함하여 총 18점의 문화재가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해 전의 일이다. 그가 하회마을 고향집으로 내려가 얼마 동안 쉬고 있던 어느 날 뜻밖에도 고개 너머에 살고 있는 숙부가 찾아왔다. 그 분은 평소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고 좀처럼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며, 그의 언행은 바보스럽다는 평판을 들을 만큼 모자라는 인품이어서 류정승의 집안에서는 흔히 바보아저씨, 즉 치숙(痴叔)으로 불렸다. 
그런데 그 치숙이 그 날 따라 조카에게 바둑을 한 판 두자고 청하니 '바보아저씨가 바보 같은 말을 하는구나.' 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면서도 본래 고상한 유학자인 그는 정중하게 숙부의 소청에 응하여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바보아저씨가 바둑을 둘 줄 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던 류성룡은 뜻밖에 바둑이 처음부터 몰리기 시작하더니 전판이 몰살 당하고 겨우 한쪽 귀퉁이만 사는 꼴이 되어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치숙은 대승을 거둔 뒤 껄껄 웃으면서 "자네 재주가 그래도 웬간하네. 팔도(八道)가 모두 다 병화(兵火)에 짓밟혀도 변방 한 곳에서 다시 나라를 회복하구먼."하고 이상한 말을 했다. 치숙의 그 말은 앞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팔도가 왜구들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게 되고 조선 임금이 국토의 한쪽 귀퉁이인 의주로 피난가게 될 것을 예언했던 것이다. 한 판을 더 청하는 류성룡에게 치숙은 손을 내저으며 말하기를 "실은 내가 자네와 바둑을 두려고 온 것이 아니라 이상한 변괴가 일어날 조짐이 엿보이기에 찾아왔네. 며칠 후 제법 건장한 중이 와서 하룻밤 유숙(留宿)을 청할 것이니 절대 허락하지 말고 내 집으로 보내주게." 하고 신신당부한 뒤 돌아갔다. 과연 치숙의 말대로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는 중 한 사람이 유숙하기를 간청하기에 재너머 치숙의 집으로 보냈다. 그 중은 우리나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리, 군사시설 등을 정탐,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선의 큰 인물인 류성룡을 암살하려던 왜의 첩자였으며, 그 날밤 치숙에게 혼이 나서 달아났다고 한다. 어떤 야화에 의하면 치숙이 아니라 서애의 바보형이었으며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이었다고도 하는데, 바둑계에 예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아쉽게도 고증할 길은 없다.
먼저 하회마을로 들어서면 갈림길의 길목에서 마을에 대한 소개와 관람 순서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는 안내원의 모습이 보인다. 워낙 유명하고 관람객도 많이 찾는 곳이라서 그런지 하회마을 곳곳에서 관광가이드가 가옥의 유래와 그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하회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양진당(보물 제306호)은 조선 명종시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입암 류중영(1515-1573)겸암 류운룡(1539-1601) 선생 부자분이 살았던 집으로 풍산 류씨 하회 큰 종가이다.
양진당 바로 옆에 위치한,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은 평생을 청백하게 지내신 선생이 삼간초려에서 별세한 후 문하생과 사림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졸재 류원지(1588-1674) 선생을 도와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마루에는 전서체로 멋들어지게 씌어진 현판이 있다. 충효당 안에는 서애 선생의 징비록(국보 제132호-서애선생이 조정에서 물러난 후 임진왜란의 득실을 필사본으로 남긴 수기)을 비롯한 유물들을 보관·전시하는 영모각이 있다. 이 곳 영모각의 현판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라 한다.
충효당 앞 마당에는 구상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이 나무는 1999년 4월 21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안동 하회마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심은 것이다. 구상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 고유의 나무로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이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할 때 옷을 걸어 놓는다는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구상나무는 힘찬 기상과 추위를 견디는 굳건한 힘을 지니고 있어 우리 민족의 외유내강(外柔內剛)한 모습과 같으며, 선녀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은 여왕 같은 기품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 구상나무를 선택한 것은 아닐지.   
임진왜란에 얽힌 류성룡의 재미있는 바둑설화가 또 하나 전해 내려온다. 선조 임금과 조정백관이 의주로 피난 가 있을 때의 일이다. 명나라의 구원군 대장 이여송(李如松)은 명성 높은 장수이기도 하지만 바둑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고수였다고 한다. 의주에 머무는 동안 우리나라의 고수들과 심심치 않게 바둑대국을 즐겼다고 하는데, 하루는 선조 임금과 대국을 해 보고 싶다는 청탁이 왔다. 구원군을 이끌고 온 명나라 대장의 청을 거절할 입장이 못 되는지라 바둑수가 약한 선조로서는 도저히 이여송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응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류성룡은 꾀를 내어 임금의 대국을 도왔다. 즉, 임금의 머리 위에 받쳐든 햇빛가리개인 일산(日傘)에 미리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옆에서 그 일산을 기민하게 움직여 임금이 두어야 할 곳에 햇빛이 비치도록 기교를 부렸다고 한다. 당대 최고수인 류성룡의 절묘한 훈수 덕에 선조 임금의 착점은 한수한수 생기를 띠어 이여송의 바둑수에 능히 필적할 만한 명국이 전개됐다. 한 판의 바둑을 종국하고 나서 계가를 해 보니 무승부의 화국(和局)으로 결말이 났다고 한다.
충효당에서 낙동강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니 담연재(澹然齋)가 나왔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곳이 탤런트 류시원의 본가(本家)라는 점. 이 곳은 작년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시 73회 생일상을 받고 하회마을 주민들과 축배를 든 곳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활약중인 우리나라 프로기사 류시훈 七단도 류성룡 선생의 13대 손이라고 하는데, 류씨 집안은 서애 선생의 핏줄을 이어 받아 유명인을 많이 배출하는 명문인 모양이다.
하회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강가엔 만송정이 자리하고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비록 수백 여 그루의 소나무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이름이 붙여졌을 당시엔 만 그루의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만송정 맞은 편으로는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기암절벽인 부용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선유줄불놀이가 행해진다. 부용대 위에서 솔단에 불을 붙여 낙동강으로 떨어뜨려 흥취를 돋우는 놀이로, 뱃놀이와 불꽃놀이가 조화를 이루며 펼쳐진다
서애의 연보(年譜) 행장(行狀)중에 다음과 같은 바둑이야기가 나온다.
하루는 서애가 낙동강 강가를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앞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안 자제들 대여섯 명이 바위 위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시 선비 집안에서 자제들이 글공부를 하지 않고 바둑이나 장기를 즐기다가 집안 어른에게 들키면 혼벼락이 나던 시절이었으므로 서애는 자제들이 보면 무안해 할까봐 그냥 돌아섰다가 다음 날 자제들을 데리고 그 바위 앞을 지나면서 "이 바위는 위가 평평하니 바둑두기에 알맞겠구나. 이 바위를 난가암(爛柯岩)이라고 이름 붙여야겠다"고 말하니 자제들이 서애의 높은 인격에 감복했다고 한다.  
 하회마을에서 약간 떨어져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