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각에서 이어집니다)

- 도산서원
임청각에서 안동시내로 들어와서 다시 도산서원으로 향합니다. 도산서원 가는 길은 안동시내 곳곳에 도로표지판이 있기 때문에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안동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도산서원 때문입니다. 흠모해 마지 않는 퇴계선생의 체취를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제 생활을 반성하고 앞날을 살아나갈, 말하자면 깨달음이나 다짐을 얻고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도산서원을 향하는 제 마음은 경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은 거리도 꽤 되고 회전이 심한 산길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를 보면 낙동강을 따라 가는 길이라고 적힌 부분이 있는데, 그건 옛길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되고 지금 따라가는 국도에서는 낙동강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퇴계선생의 명성과 인품에 걸맞게 도산서원은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고 높은 품격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퇴계선생 생전에는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등 소박하기만 한 건물이 있었습니다만, 사후 서원으로 되면서 전교당과 동서의 광명실, 사당, 상하의 고직사 등 여러 채의 건물이 들어섰지요.

저는 퇴계선생의 체취가 묻어있는 도산서당과 절우사(서당 옆을 흐르는 개울 건너에 잇는 작은 화단으로 퇴계선생께서 선비의 절의를 상징하는 매화, 대나무, 국화를 키우시던 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선생의 향훈을 느껴보고자 했습니다.

도산서원에는 퇴계선생과 함께 월천 조목선생이 종향되고 있습니다. 월천선생은 퇴계선생의 대표적인 제자 중 한분으로 퇴계선생의 인품을 가장 많이 닮은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퇴계선생을 가장 오랫동안 곁에서 모신 분입니다. 당시 뜻 있는 많은 선현들이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길러냈듯이(이런 분을 산림 또는 처사라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분이 경상좌도의 퇴계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경상우도의 남명 조식선생이죠) 월천선생 또한 벼슬은 봉화현감에 그치고 오직 퇴계선생을 따라 학문에 정진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이런 연유로 제자 중 유일하게 월천선생이 도산서원에 배향되는 영광을 입었을 것입니다만, 한 가지 더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하니 그것은 광해군 때 집권당이었던 북인이 서애선생과는 원만치 못한 관계였던 반면 월천선생과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었기 때문에 월천선생의 도산서원 종향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도산서당 앞쪽 담 아래에 고박정희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옮겨 심었다는 '금송'이 기념식수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가당한 일인가는 별론하고 그것도 한 역사이니 파괴치 않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리학을 정립한 회암주희선생, 즉 주자가 살아있을 때 거의 동시대에 양명학을 연 상산육구연선생이 멀지 않는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두 분은 학문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했지만 서로의 학문을 존중하여 주자께서 상산선생을 자신이 계신 서당에 초청, 자신의 제자들에게 강의하게 했다고 합니다. 또 육상산이 형의 상을 당하여 그 제문을 요청했을 때도 기꺼이 써 주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것이 중국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중국 어느 곳을 가도 유교와 불교와 이슬람교와 라마교의 유적이 공존하고 있는 것, 이것이 중국의 힘이라고 봅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 퇴계선생께서 양명학(즉 심학)을 비판하는 말씀을 하신 것을 계기로 남인, 서인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양명학을 이단시하게 됩니다.

조선말 경북성주의 남인가문에서 한주 이진상이란 뛰어난 학자가 나옵니다. 퇴계학통의 한 맥을 이은 분이죠. 이분이 퇴계선생을 사숙하고(사사한다는 것은 스승을 직접 모시면서 배운다는 것이고, 반면 사숙이라 함은 직접 뵙지는 못해도 스승의 남겨진 저작 등을 통하여 배운다는 뜻입니다.) 철저한 주리론을 주장했을 때 영남의 남인들은 '당신의 학문은 가야산 깊숙이 감춰두었다가 퇴계선생의 학문이 다하면 그 때 세상밖으로 가져나오라'고 비꼬듯이 비판합니다. 이렇게 편협한 것이 우리의 학문과 정치풍토입니다.

제가 짧은 지식으로 말씀드리면 조선시대 당쟁을 확대심화시킨 주범 2인을 꼽으라면 송강정철과 우암송시열입니다.
송강정철은 정여립모반사건을 계기로 마녀사냥식 동인사냥에 나서 동서인의 분당을 고착화하였습니다. 
우암송시열은 남인을 철저히 짓밟았을 뿐만 아니라 제자였던 명재 윤증과도 그 자신의 독선으로 인해 갈라서서 마침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게 만듭니다.
우암송시열은 노론에서는 주자에 버금가는 인물로 숭상되어 '송자'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남인에게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개이름을 '시열이'라 부른다 하니 이 모든 것이 그 자신의 독선이 빗어낸 화가 아닌가 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금송'에 대해서도 혹 속이 편치 못하신 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일이라 생각합니다.

도산서원 입구에는 공자의 후손으로 도산서원원장을 지낸 공덕성이란 분이 '추로지향'이라 쓴 비문이 세워 있습니다. '추로지향'이란 퇴계선생이 나신 안동이 공자와 맹자가 나신 곳과 같다는 뜻으로 그만큼 퇴계선생의 학문이 깊고, 높고, 넓다는 의미가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