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댐으로 고향 잃은 할머니, 임하댐으로 또 상처
물은 고향을 앗아가고, 댐을 마음을 뺏았다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에는 늙은 장돌뱅이 몇몇...

그러나 2002년 지금은?
1970년대 안동댐 건설로 고향 예안면을 물 속에 묻고 이곳 임동면으로 이사를 나왔다가 20년도 채 못살고 다시 임하댐으로 제2의 고향이라며 정붙이고 살던 중평리 마저 수장시키고 중평 신단지에 다시 터를 잡고 산다는 칠순의 할머님 한 분.
그 분에게 댐은 곧, 저주의 대상이다. 물 맑고 산이 좋았던 고향 예안면이 물 속에 잠겨 쫓겨나다시피 임동면으로 이사 나올 때만 하더라도 '나라에서 시키는 일이다' 싶어, 또 법이 무섭던 시절이라 제대로 보상금 이야기도 못하던 시절이라, 댐이 만들어지면 발전한다고 하니, 발전이 뭔지도 모르고 이사 나와야만 했다는 할머님.
그러나 칠순이 넘은 나이에 환갑을 바라보는 며느리와 함께 장사를 하시는 할머님에게는 살아간다는 표현보다는, '하루하루 삐친다'는, 할머니의 표현이 어울린다.

예안에서 이사 와 임동 채거리시장 통에서 장사를 할 때는 그나마 장꾼이라도 많아 그럭저럭 사는 것은 걱정 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할머님의 가게 앞으로 시장 장옥(場屋)이 들어서 있고 학교가 두 군데나 있어도 먹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단다.
장날 이야기를 묻자, "장날이 있냐?"며 되레 물으신다. 5일과 10일 닷새마다 열리는 장날이라고 해도 장꾼은 그나마 서너명, 그것도 장사가 안 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과거 화려했던 임동 채꺼리시장의 향수를 느끼고 싶어하는 환갑을 넘긴 보따리 옷장수나 몇 명 올 뿐, 그들도 결국 오전만 지나면 보따리 싸서 돌아가기 바쁘다고 한다.
향수는 향수로 그칠 뿐, 결국 현실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골이라도 집집마다 화물차에 승용차 한 대씩 있고 자동차로 20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서 웬만한 물건들은 시내 대형 할인마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하루매상이라고는 고작 몇 만원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고 장사를 그만두고 굶을 수도 없는 일, 임하댐으로 보상받은 얼마 안 되는 돈은 융자까지 보태 집이나마 지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빚만 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서 외지로 나가 자리를 잡고 살면서 얼마 되지는 않지만 용돈이라며 보내주는 돈이라도 있으니 당장 굶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몇 해 전인가, 임하댐 높이를 높여 중평신단지가 물에 잠긴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때 소문이 현실이기를 바랐다. 두 번 댐으로 고향을 잃은 죄인이 터전을 세 번 물 속에 재운다고 무슨 대수냐"며 "그렇게 해서라도 이 저주받은 땅, 임동을 벗어나 안동시내 귀퉁이라도 안동시민, 대한민국 백성으로 살아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헛소문으로, 주민들의 기대심리가 만들어낸, 그렇게 해서라도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가련한 사정에서 나온 것이라 그런 소문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한다.

"왜 보상받아 안동으로 이사가시지 않았냐"하는 물음에는 "이사갈 만큼이나 보상은 줬느냐?"며 되레 물으신다.
"임동면으로 이사 나왔을 때, 융자받아 집 지었다고 제대로 보상도 못 받았고 나와 또다시 융자받아 새 집 지은 형편에 언감생심 시내로 이사 나갈 수 있겠느냐"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