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에 가면 하회16비경이 있다.
졸재 류원지 선생(서애 선생의 손자)의 문집에 남아 있는데, 하회마을의 16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소개해 둔 글이다.
그 첫번째가 임압청창(立巖晴漲)이다. 입암은 서애선생의 부친인 류중영 선생의 아호이자 형제애가 남달랐던 서애선생과 그 형 겸암선생을 칭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두분 형제애를 말함 일게다.

부용대 기슭에 보면 겸암정사가 있고, 정사 앞에 물 속에 잠겨 있는 바위를 말함이다.
실제로 보는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입암이 갖고 있는 의미가 더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서애와 겸암의 각별한 정은 아직도 많은 전설이 되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자면 '서애와 치숙'편을 들 수 있다. 

서애는 알겠는데 치숙이 누구인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치숙을 풀이하자면 어리석은 숙부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겸암이 맞다.(사실 나도 하회마을이라는 책을 낸 서수용씨의 책을 보고 나서야 치숙이 겸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치숙은 말 그대로 서애의 숙부로만 생각했다)

서애와 치숙이 바둑을 두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겠지만 요약하면 치숙이 당시 조선의 국수로 평가받던 서애를 만방으로 이기고 바둑수까지 가르쳐 그를 죽이러 온 왜인 킬러까지 혼을 내서 보낸다는 이야기이다.

때는 왜란이 시작되기 전이다. 서애는 임금이 있는 한양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서애의 명성을 왜인들도 알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킬러를 파견했다. 
그 사실을 미리 안 치숙(겸암)이 하회에서 천리길 한양까지 올라가 서애를 찾아 바둑을 두잔다. 서애는 당시 조선 최고의 국수로 평가를 받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바둑을 두는 것을 한번도 본 일이 없는 형이 찾아 바둑을 두자고 하니 우습지 않는가. 사양타가 서애가 백돌을 잡으려 하자 치숙이 백돌을 집고 바둑을 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서애는 말하지만 치숙은 "두고 보면 알일"이라며 백돌을 고집하고 바둑은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뒤 서애는 낭패를 당한다. 서른 여섯번이나 수를 물리고 그때마다 치숙에게 수를 배우지만 바둑은 형편없이 지고 말았다.
바둑에서 이긴 치숙은 말한다. "내일 이 시간쯤에 기골이 장대한 승려가 찾을테니 집안에 일이 있다"고 말하고 자신에게 보내란다. 설마 했지만 이튼날 정말, 승려가 찾아 바둑을 두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어제께 치숙이 두던 그 형세 그대로 승려가 바둑을 두는데, 미리 수를 치숙에게 배운 서애가 바둑에서 이기고 치숙의 말대로 승려를 그에게 보낸다.

치숙은 미리 항아리 가득 술을 준비해 두고 있다가 승려을 맞고 둘은 거나하게 취한다. 결국 승려가 술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자 치숙이 승려를 올라타고 칼을 빼든다.
그리고 말하지, "네 이놈, 네놈이 어디서 누구의 명을 받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고 있다" 깜짝 놀란 승려가 목숨을 구걸하자 치숙은 "목숨은 살려 줄테니 전쟁이 일어나면 안동땅은 피해 가라"고 주문한다
전쟁이 터지고 정말이지 왜인들은 안동을 피해갔다고 한다.

이 설화말고도 겸암과 서애의 정이 담겨 있는 이야기는 많다. 다 소개하기는 힘들고 다음에 하나씩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입암을 보기 위해서는 늦가을이나, 지금과 같은 겨울이 좋다.
언제 부용대와 겸암정사를 볼 일이 있다면 꼭 한번 찾아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소개한다.

참 이번 토요일, 역시 하회 16비경에서 네번째에 드는 마늘봉을 찾을 계획이다. (전적으로 계획이다.)
산봉숙운(蒜峰宿雲) 이라해서 구름에 잠긴 마늘봉이라는 뜻인데......
마을봉은 하회마을 남쪽, 강건어 마늘처첨 뽀족한 봉우리를 말한다. 산이 좋아 늘 구름이나 안개가 서려 있어 신령스러운 곳이다. 이곳에서 사진은 찍게되면 하회마을은 물론 부용대까지 담을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먼 산에 마늘봉이있다.
참 여기 올린 사진은 해질녁에 찍은 사진이라 별루이다.

하회 16비경의 첫째에 의미를 둔다면, 둘째는 소리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사진으로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겨울보다는 여름이 제격 일게다.

마암노도(馬巖怒濤)........, 풀이하자면 말처럼 생긴 바위에 성난 강물이 지나간다고 해야 할까?
첫째인 입암과 같이 둘째 역시 부용대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이다. 그러나 입암이 만송정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면 둘째인 마암은 만송정에서도 볼 수 있다는 차이 일게다. 하회에서는 마암을 '말바위', 또는 갈모바위라고 부른다. 만송정과 부용대 사이를 흘러가는 강에 솟은 바위인데, 만송정에서 보면 부용대와 비교해 제 멋을 찾을 수 없다.

역시 성난 강물을 볼 수 있는 여름철 옥연정사와 겸암정사에서 말바위를 바라보는 것이 제격이다. 물소리도 물소리지만 말바위에 부딪혀 부셔지는 물보라와 터질 듯한 물함성이 제 멋인 곳이다.

하회 16비경에서 첫째와 둘째가 모두 바위라는 것에 대해 이상히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첫째인 입암이 형제애를 상징하고 서애와 겸암(겸암 류운룡 선생이 형이다)의 형제간의 정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치는 말바위에 큰물이라도 지나는 여름철에 본다면 하회 16비경을 충분히 공감하고 첫째와 둘째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에 공감을 할게다.

천지를 꿰뚫고 지나가는 강물에도 미동도 않는 당당함, 바로 선비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다. 또 그렇게 살고 싶은 이들의 염원이 담겨있다면 더 이상의 이론이 없을 것이다.

잔잔한 겨울의 말바위가 세상을 향해 부지런히 스스로를 연마하는 상태라면, 여름 말바위는 거친 세상 풍파에 당당히 맞서는 선비의 기개를 엿볼 수 있을게다.

그래서 하회 16비경이 더욱 아름답다. 물 속에서 살아가는 두 바위에다 첫째와 둘째의 자리를 내어준 졸재 선생의 기개와 기품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