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 내가 오늘 손을 잘 씻고 왔다. 키키키"
"아지작, 아지작", "똑........., 똑..........,"
부러지고 씹혀 넘어가는 소리 들리니?
"어디ㅡㅡ 보자........, 으ㅡㅡ음, 이 향......, 이 색 좀 봐......, 어디 보자, 어느 놈부터 먼저......"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어! 근데 이건 뭐야........, 이렇게 생긴 놈도 있었네........, 참 별나게 생겼다"
삼삼오오 모여 손과 입을 놀리면서 제각기 탄성을 터트린다.
때 이른봄의 성찬, 벌써 식탁에 봄이 올라 온 것이다.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기는 벌써 20년,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인 12시30분이 넘어도 좀처럼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컴퓨터 앞에서 여기저기 쿡쿡 쑤시고 찔러보다가, 좀 늦게 식당을 찾았다.

'어제처럼 생선가스가 나오면, 땅굴주인한테 한소리 해야지....'
속으로 다짐을 하고 내려갔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지하 1층에 직원 식당 영양실장을 땅굴 주인이라 한다. 빛도 한줌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지하에서 생활한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어제 점심때 생선가스 먹고 소화가 안돼 저녁까지 굶었는데 또 그 딱딱한 생선가스가 나오면, 내가 차라리 주방에 들어간다, 흥 못할 줄 알고, 내가 그냥 두나봐라, 소화제라도 사 내라고 해야지' 단단히 벼르고 들어선 식당....

식당 문 앞에서부터 이상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비도 오는데 이거 무슨 냄새야.... 에이, 지금이라도 나가서 먹어 말어'
혼자 속궁시렁을 뱉으며 들어선 순간, 식탁마다 넘치는 봄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원래 손이 큰 땅굴주인이라지만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냐, 뭐야! 뭐야! 어ㅡ 뭐가 이렇게 파래?'
두 눈을 켜뜨고 한참을 식탁을 보는데..., 때 이른 봄나물이다.
상마다 넘쳐흐르는 건 분명, 봄나물이었다.

'땅굴주인 할마이가 미쳤나....... 야! 매일 반찬 제대로 안나온다고 8층 할배(이사장이다)한테 구박받더니, 할마이한테 이런 센스가 있었나, 히히, 어찌됐던 오늘 제대로 한번 먹어야지'
배식을 위해 늘어선 긴 줄에 꼬리를 달고 보니, 벌써 올 들어 처음 봄성찬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랑곳 않고 한입 벌이고 웃는다.
이빨도 성치 않은 8층 할배도 오늘은 한자리를 차지하고 부지런히 입을 벌리고 흐뭇해한다.

"할매, 보리밥 없나?"
땅굴할매는 돌아보지도 않고 "있는 데로 처먹어"란다.
"그래도 할마이, 오늘 같은 날 햇된장 풀어 된장 끓이고 보리밥 해야지, 그리고 말야, 커다란 양푼이에다, 참기름 바르고 나물 손으로 똑똑 분질러 넣고 따그닥 따그닥 비벼서 동네 아줌마들을 다 불러 먹어야 제 맛이지, 안 그래 할마이?"
"아 그놈, 말많네...., 밥 그릇 이리 내놔!, 싫음 안 처묵으면 되잖아"
"됐어 할마이, 그냥 먹으면 되잖아, 괜히 신경질이야"
'그래도 속 깊고 마음 넉넉한 할마이, 그 속 누가 모를 줄 알고, 히히히'

사실 땅굴 주인 할마이는 아직 쉰 고개도 넘지 않은 새파란 아줌마다. 너무 편하다는 것이 서로에게 반발로 지내고 있다. 나이도 나보다 10년 이상 많은데.... 버릇없는 나를 집안의 막내 동생처럼 대한다.

턱하니 자리에 앉고 보니, 야! 정말 봄이 성큼 내 식탁에 와 앉은 걸 느낀다. 양복을 벗어 의자에 걸고 팔을 둥둥 걷어 올리고 본격적으로 먹을 채비다.
'어느 놈이 좋을까? 누구부터 먹어줄까?'
봄나물이 아주 귀여워서 죽겠다는 눈치를 보내자, 이놈들이 '저요! 저요!' 외치는 것 같다.
잘 자란 나물, 싱싱한 놈을 골라 몇 놈을 우선 포개고 그 위해 기름기가 흐르는 밥 한덩이 올린다. 그리고 고추장 조금, 고추의 고장 영양에서 만든 고추장이다.
그리고 입을 한껏 벌여 쑤셔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톡톡 튀는 봄의 맛이란........., '야 이거 소리부터가 다르다. 겨우내 묵은 나물만 먹다가 제철 나물이 입에 들어가자, 입안에서도 뱃속에서도 난리다.
'나도 줘요, 빨리요, 빨리' 입안 여기 저기서, 뱃속 여기 저기서 서로 달라고 난리다.

손가락 여기 저기에 고추장이 묻고 장이 묻고, 작은 입에도 이미 빨간 고추장이 한껏 발라진 내 모습이 우스웠던지, 앞자리에 앉은 새내기 간호사가 입안 가득 물고 웃음을 터트린다.
툭툭 튀어나오는 밥알.... 그래도 전혀 더럽다는 생각이 안드는 것은 아마도 첫 봄을 먹고 있어 즐거워서 일거다.
고추장이 묻은 손가락을 입에 넣고 쪽쪽 빨아 당기자, 아니 이젠 새내기 간호사가 아주 넘어간다.
"크크크 하하핫"
그녀는 나를 보고 웃고 난 또 그녀를 보고 웃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시작한 웃음
아마 그건 모든 이들이 간절히 봄을 기다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