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추적.....'
아침부터 내리는 비에 좀이 쑤셔 견딜 수 없다. 몸도 찌푸뚱하고...,
'아, 이거 아주 장마다. 장마, 뭔 봄 날씨가 이래..... 뭐하지, 오늘은 뭘 하고 보내나...에이 비가 그쳐야 뭐라도 하지....., 그래 밥이나 먹고 오자'
정말 한심한 토요일이다.

'후다닥'
비를 피해 병원 건물로 들어선다.
'아... 지겨운 땅굴, 토요일도 땅굴에서 밥을 먹어야 하다니, 참 내 인생도 불쌍하다'
'그렇지, 토요일이니 국수지.... 에이, 살기 위해서 먹는다, 먹어..'
국수 한 그릇, 고개를 숙이고 밀어 넣는다.
'에이, 뭐 내리막인데 씹을 거나 있나. 소화는 어차피 위장 몫이고, 맛도 별로 없는 국수 한그릇 먹는데 시간 걸릴 거 있나?'
꾸역꾸역 밀어 넣는데 방사선 과장이 다가와 국수 다싯물까지 말끔히 비운 그릇을 내민다.'야, 니나 나나 한끼 정도는 건너뛰어야 하는 거 아냐?'
여기 저기서 '쿡쿡'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에이, 할매 여기 국수 한 그릇 더 줘!"
'아니 내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잠시 뒤에 따라올 비극은 생각도 못했다.
우리 영양실장 기다렸다는 듯,
"미친놈, 아나 여기 있다"
간장까지 넣은 국수 한 그릇이 '탁' 소리를 내며 식탁에 놓인다. 이젠 아주 여기 저기서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방사선과장은 아예 내 앞자리에 앉아 진을 치고 앉는다.

"과장님 안 가세요" 퉁퉁이는 내 말에
"너 다 먹는 거 보고......"
여기 저기서 수저로 식탁까지 두드리며 난리다.
'에이. 어쩐지 오기 싫더라니... 내가 참는다 참아'
목구멍까지 올라 차도록 국수를 밀어 넣었더니, 숨도 쉬기 힘들어진다.
뒤뚱거리며 병원 문을 나서는데 비가 멎었다.

사무실... 컴을 켜고 다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노래나 들을까 싶어 스피커를 켜고 의자를 젖힌다.
나른하다.
'아 정말 봄이네, 아이구 내 팔자야, 토요일 컴이나 붙잡고 놀고 있다니...'
'이제 비도 그쳤는데, 뭐하나? 얘들 불러 출사나 나가자고 할까...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늘어지게 잠이나 잘까..'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아주 책상 위에 다리까지 올려두고 배를 두드리며 흥얼거리는데....
'참,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단순한 놈이야....... 그 짧은 순간에 땅굴에서 수모(?)를 잊고 이러고 있다니'
혼자 픽 하고 웃으니 앞자리 직원이 묻는다.
"계장님, 왜 그러세요, 퇴근 안 하세요"
"아니, 너 먼저 가"
보지도 않고 그를 내보낸다.
그리고 컴 앞에 다시 다가 앉는다. 순간 '딩동' 메시지가 뜬다.

"주말입니다..날씨는 좀 우울하지만 마음은 밝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근데 오늘저녁메뉴는 몬가요,,,?"
"나른한 그리움 한 그릇, 음...... 반찬은 뭐가 좋을까요?"
그리고 몇 번의 메시지가 더 오고 갔다.
날씨도 좋은데, 봄마실 나가시라니까, 하늘이 수상하단다.
'맘에 좀 걸리네'.

후배들에게 전화를 한다.
"야! 비도 그쳤는데, 출사 나가자, 오늘은 고산정 가자, 아님 길안 만휴정에 가던지, 날이 풀려 폭포나 강도 녹았을 거고, 가서 봄이나 담아 오자"
"아 형, 나 좀 빼주면 안되요?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데...."
"나 오늘 국화빵 향기 보러 가야해요"
"국화빵 같은 소리하네, 저녁 전에 오면 되자나, 잔소리말고 나와 알았지?"
숫제 강압이다.
전화를 끊고 부지런히 집에 들려 신발을 갈아 신고 차를 챙긴다.

'음, 오늘은 뭐 들고 나갈까? 관음왕 조금하고, 호접란 조금, 음 ... 그리고 장미화차 조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차를 챙겨 카메라 가방에 담고 약속장소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다.
'이런 이놈들이, 한 놈도 안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한다.
전화기 너머, 죽어 가는 목소리 "형, 나 오늘 못 가요. 한번만 봐줘요"
'아 한심한 내 인생아, 그래 혼자 가고 만다'
같이 국화빵 향기 보러 가자는 후배들에게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고 거칠게 차를 움직인다.

'어디가지, 집에 가서 잠이나 잘까?'
어느새 차는 집 앞을 지났다.
'에이, 혼자 가자, 고산정 들러 청량산까지 보고 오자, 청량산 가는 길에 후배가 하는 도자기 가마에서 차나 한잔하고 오지 뭐, 오랜만에 솟대도 보고...'

고산정(孤山亭), 퇴계 선생이 가장 아꼈다는 제자, 성성재 금난수 선생이 지었다는 정자다. 퇴계선생이 도산에 서당을 짓고 틈나면 청량산에 들리셨는데, 도산에서 청량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강길 옆 절벽 아래 제비집같이 지어진 정자다. 
오래 묵어 더욱 아름다운 소나무랑, 하늘에 닿을 듯한 암벽을 양옆에 세운, 안동의 수많은 정자 가운데, 단연 가장 아름다운 정자다. 
그동안 몇 번을 찾았는데....., 질리지도 않고, 만휴정과 더불어 그 아름다움이란 찾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