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를 만나러 가는 길)

후배들에게 버림을 받고 한참을 말을 잃고 운전만 했다.
자동차가 강변대로를 지나 목적지인 도산면으로 가는 길목인 안동시 안막동 청머리재가 보이도록 그렇게 달렸다. 차창 옆으로 빠르게 치암고택과 향산고택이 지난다.
아! 향산고택......, 이동석 선생님은 잘 계시는지 모르겠다.
'언제 인사 한번 드린다면서 몇 년이 넘도록 찾아 뵙지도 않고, 난 나쁜 놈이다. 암, 나쁜 놈이지...'

향산고택은 독립운동가인 향산 이만도 선생의 생가이다.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 선생은 고종 3년(1866)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교리, 웅교, 양산군수 등을 지냈다. 1907년 자헌대부의 직첩이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고 1910년 나라가 일제에 의해 병탄되자 유서를 지어 고결한 뒤 24일간 단식하여 순국하셨다.
1986년 3월 1일에는 한 집안 삼대의 독립 유공한 업적을 기려 '삼대 독립운동 가문'으로 지정 받았다.

여기 이 건물은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8번지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1976년 4월 현 위치로 이건했다. 그러고 보면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잃고 자리바꿈을 했다.

'이제는 찾는 이도 드문, 육사생가도 그렇고, 여기 이곳 치암고택도 그러하지 않은가? 뿐인가, 안동댐 민속촌에 들어선 그 많은 민가와 석빙고도 알고 보면 예안에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지금은 선생의 후손이 시민운동을 하고 계신다. 나와는 같은 모임의 회원이기도 하여 전에 가끔씩 찾아 뵙기도 했는데, 사는 게 뭔지 싶다.
'바쁘다는 핑계로 좋은 사람들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죄이다'
혼자 속생각을 다진다.
'그래 날 풀리면 막걸리라도 사들고 찾아뵈어야겠다'

MP3에서 흘러나오는 서글픈 샹송이 기분을 더욱 가라앉게나 하지는 않았나 싶어 이어폰을 뽑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에고, 뭐 후배들에게 하루 이틀 당하는 일도 아니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쳤나? 하늘이 맑아오네, 참, 빌리브님 하늘이 수상하다고......, 글쎄 두고 보면 알 일이지 뭐, 키키....,'

차창을 내리고 바람을 조금 맞자 금새 기분이 달라졌다.
'아! 아직은 조금 춥네. 흠 이거 기분 내다가 감기 드는 건 아닌지 몰라'
창을 올리고 이젠 아예 휘파람까지 불어낸다.
'그래, 이게 내 모습 아니겠어, 단순, 무식, 과격, 음란, 저질, 퇴폐, 대학에 다닐 때 같이 연극하던 후배들이 붙여준 별명치고는 제대로 지었어. 나한테 딱 어울리잖아, 키키 귀여운 놈들'

청머리재를 넘은 차는 와룡면으로 접어든다.
와룡면(臥龍面), 용이 누운 현상을 한 곳이라는데 그 연유를 찾을 만큼, 안동에서 묘자리 하나는 알아주는 동네다. 마을이름도 대부분 와룡이니 오룡이니 하면서 용이 누웠네, 용 다섯 마리가 여의주를 다투네 하면서 많은 지관들을 유혹하지 않았던가.

'나도 돈이라도 좀 있으면 여기 어디 땅이라도 좀 사둘텐데... 하긴 나같이 덕도 없는 놈이 묘자리만 좋으면 뭐하냐, 덕을 쌓아야 발복한다고, 덕을 쌓으면 자갈밭도 명당인데, 그나 저나 안동에서 똥께나 뀐다는 작자들 태반이 여기 와룡에다 선산을 썼다는데, 모두 발복했는지 궁금해지네'
'에이 뭐 돈도 없고, 복도 없는 놈이 지 코도 못 닦는 주제에 남의 코는 웬...,'
혼자 궁시렁 거리는 사이 안동에서 한양 가는 중앙선 철길 첫 번째 역이 있는 서지를 지난다.

'조금만 지나면 어디 남근석(男根石)이 있는데, 꽃동산 고개 어디인데...., 아! 저기 있네..., 그놈 참 보면 볼수록 참하게 생겼다, 하긴 저렇게 잘 생겼으니 도로 공사 중에 무너져 내리자 면민들이 모두 나서 시청에다 데모를 하지....., 뭐라더라? 남근석이 떨어지면 남자들이 구실을 못한다던가? 정말 그런가?'
'야! 참 그놈 보면 볼수록 잘생겼다. 알도 큼지막한 게, 숫처녀들 애간장 깨나 녹였겠다. 헉...., 이 무슨 발칙한 상상을......'

사실 그랬다.
지난해인가 도로를 넓히면서 도로 옆 산 위에 놓인 남근석이 굴러 떨어진 일이 있었다.
그러자 면민들이 도로공사와 시청을 항의 방문해 남근석을 제자리에 세우고 아예 공원을 만들려는지 오솔길까지 냈다.
'허 참!, 뭐든 잘생기고 볼일이야, 그래야 사랑 받지, 키키...'

와룡면 소재지를 지나고 있다. 여기서 예안으로 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다.
예안(禮安)...., 몇 해전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어느 시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박기자, 자네 고향 임동하고, 내 고향 예안하고 바꾸자면 절대 안 바꿀 걸세"
"저도 그렇습니다. 누가 고향을 바꾼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그의 고향 사랑에 대해서는 한 수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월곡이나, 임동은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곳이다. 월곡면이 안동댐으로 수몰되었던 것처럼, 내 고향 임동 역시 수몰로 고향을 물 속에 묻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나마 임동면은 나은 편이다.
월곡면은 면 이름 자체가 사라졌다. 면 소재지가 수몰되면서 인근의 예안면으로 대부분 흡수되거나, 도산면, 임동면으로 쓸려 들어갔는데, 그 때 이름을 예안에 빼앗긴 것이다. 그러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와룡 삼거리에서 목적지인 고산정까지는 반시간 거리다.
가는 길에 예안땅에 있다, 수몰로 이건 된 오천군자리 광산김씨 집성촌이 있고, 예안향교를 지나면 신예안이라는 도산면 서부리도 나온다. 그리고 그 유명한 도산서원도 길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