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으면 낡은 영상처럼 펼쳐지는 고향 길
망천, 사의, 도연, 선창, 용계…, 눈을 감으면 선한 마을
삶의 고비마다 희망 얻지만, 곧 좌절만 보게되고
늙은 농부에게 댐은 곧, 거대 벽일 수밖에

글이 나가고 독자들은 "왜 임동민국이냐"라며 궁금했을 것이다. 또 임하댐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임동면민만이 아닌데 왜 유난을 떠느냐 싶을 것이다.

임하댐은 1984년부터 1993년 12월 31일까지 만들어진 사력댐으로 댐 높이는 73m, 길이가 515m, 면적은 342만3천㎣으로 총 저수량이 595백만㎣이며 발전 시설용량은 50,000kw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많은 댐이 홍수조절, 전력공급, 농업, 공업, 생활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듯이 임하댐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세상의 댐마다 사연이 없고 아픔이 없는 댐이 있겠느냐 만은 임하댐은 그래도 준공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픔이 커 보이고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일 게다. 임동면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오래된 영화처럼 짠한 기억이 영상으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필자도 수몰 전 임하, 임동면을 찾아 천렵을 즐겼던 기억이 여러 번 있어 임하댐이 선 임동면 망천 마을에서부터 사의 악새를 지나 도연폭포와 선창, 용계마을, 국난마을, 지례, 지동마을까지 생생하게 달려온다.

특히 초여름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임동 망천마을은 물이 맑고 넓은 백사장과 크고 넓찍한 바위와 큰 나무 그늘이 많아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던 곳이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수영복이나 천렵기구가 없어도 맨손만으로도 싶게 고기를 잡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물고기는 흔했다.
지금은 귀한 민물고기 취급을 받는 쉬리(임동에서는 "각시피리"라 했다)도 흔했고, 은어나 꺽지, 쏘가리도 작살하나만 있으면 싶게 잡아 올리던 물고기였다.

그러나 1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망천은 어디에도 없다. 마을이 있던 곳은 물에 잠겼고, 사람들이 멱을 감고 천렵을 즐기던 곳은 회색 댐이 들어서 신분증을 제시하고도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렵게 됐다. 사람들은 모두 타지로 떠나고 마을을 돌며 떠들던 동네아이들도 훌쩍 커버려 고향을 가슴에만 묻고 살아가고 있다.
어디 망천 뿐이랴. 인심 좋기로 유명한 사의마을 아저씨도 물 속에 전답 묻고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자 더 버티지 못하고 고향을 등져야만 했고, 황룡과 청룡이 싸우다 만들었다는 도연폭포도 용이 흘린 피가 굳어 만들어졌다는 빛 고운 선창 바위도 물 속에 잠들었다.
몇 남은 사람들은 임동 숲당마을로 옮겨가 하루하루 고향 마을을 그리다 눈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등져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