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문학의 "식민성"을 비판해 온 논객들에 대해 - 21세기의 퇴계를 대망하며



우리 전통사상을 대하는 서양중심주의 학자들의 구체적인 논리와 주장을 검토
하기 전에 그들 서양중심주의자들의 "식민성"을 비판하면서 자생적 인문
학의 수립을 역설해 온  논객들의 면면을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양중심주의자들의 구체적 입장은 이들 비판적 논객들에 대한 대응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 논객들은 누구인가? 
수세에 몰린 서양중심주의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듯 논쟁의 최일선에 분연히 
총대를 매고 나선 사람인, K대 이모 교수가 비판적 논객들을 향한 역공의 일환
으로 펴낸 "한국 인문학의 서양콤플렉스" (민음사, 1999) 라는 책에 보면 4명의
 논객들이 거명되고 있다. 즉 조혜정 연세대 교수, 조동일 서울대 교수, 김영민
 전주 한일장신대 교수, 이승환 고려대 교수 등이 그들이다. 바로 이들 4인방이 
서양중심주의자들을 자극하여 우리 전통사상과 관련한 그들의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게한 대표적인 논객들로 보여진다.

그런데 사실은 이들 4인방 이전에, 아니 오히려 선구자격으로 (이상하게도 서
양철학 전공자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지만) 주류 인문학계의 식민성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80년대에 30대의 팔팔한 청년학자였던 
도올 김용옥이다. 80년대 초반 미국에서 돌아온 도올 김용옥이 서양중심주의 학
자들을 향해 토해내는 언설마다 통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예컨대 1985년 
『세계의 문학』(통권 36호, 1985년 여름호)을 통해 발표되었던 "철학의 사회
성"이라는 제목의 글 속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기로 한다.
      
"우리 나라에서 칸트나 헤겔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칸트와 헤겔은 우상이
며 신이며, 그들의 예찬에 그들의 평생을 보낸다. 학문은 예찬하기 위하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기 위하여도 해야 하는 것이며, 우러러보기 위하
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깔 볼 수 있기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
라 학자들에게는 너무도 이러한 양면적 역동성이 결여되어 있다. 철학은 칸트
와 헤겔에게 다 맡겨놓고 자기 자신은 철학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
들에게는 칸트와 헤겔은 '돈 보따리'이다. 평생 칸트와 헤겔을 팔아서 밥먹
고 살며, 칸트와 헤겔이 없으면 그들의 밥줄은 끊어진다."
<김용옥, 도올 논문집, (통나무, 1991, 중판 1998), 106쪽>

사실 비판자에게 가장 강력한 대응은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하기는 
도올의 그 적나라한 언사에 마땅히 대응할 논리도 없었겠지만, 그들은 이를테
면 "어디서 개짖는 소리인가" 하는 식으로 철저히 조소와 침묵으로 일관해 버
렸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전략이 적어도 도올에게는 통했다. 왜냐하면 도올
은 자기가 소속한 집단인 동양철학계에서 조차 기피를 당하는 신세였기 때문
이다. 이에는 물론 도올 자신의 처신에 일차적 흠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래
도 30대의 그 열정과 패기를 포용하지 못한 동양철학계의 "작은 그릇"이 너무나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986년 양심선언 이후 일련의 해프닝 끝에 도올은 제도권 학문의 현장을 떠나
게 된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통나무, 1984) 등을 통해 강호에 던진 
신선한 충격도 도올의 퇴장과 함께 일과성 메시지로 끝났다. 한국 인문학의 
주체적 성장을 위하여 이제 새로운 논객의 등장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 도올의 한의대 입학과 더불어 80년대는 저물고 90년대에 
4인방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 4인방에 대해서만큼은 서양철학 전공자들은 무시할 수 없었는 모양이
다. 그들은 모두들 각각의 영역에서 한 가닥 한다는 논객들이었고 제도권 내
에서도 상당한 영향력과 지지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올의 경우
와 달리 이들 4인방의 비판에 대한 침묵은 묵인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생
각했는지, 또한 그들의 비판적 메시지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차단할 필요
가 있다고 판단했음인 지 서양철학 전공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
러내면서 마침내 논쟁의 영역으로 뛰어든 것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럼 이들 4인방들이 각각 토로하고 있는 구체적 메시지들을 간략히 소개해 
보기로 한다.


①조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 : 우리 지식인들의 식민성 문제를 본격적인 
화두로 삼으면서, 나아가 그 식민성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우리 학문의 정체
성 모색을 시도한 학자가 90년대 초반에 등장했다. 연세대 조혜정 교수이다. 
1992년 ∼ 1994년 사이에 펴낸 일련의 저작인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
기와 삶 읽기 《1》,《2》,《3》" (도서출판 또하나의 문화 간)이 바로 그러
한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의 제1장을 열면 조혜정 교수
는 첫머리에서부터 이렇게 우리시대 지성의 황량한 현실에 대해 토로하고 있
음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인 사회는 식민지성에 찌들어 있다. 우리는 우
리 자신의 문제를 토론할 언어를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


②조동일 서울대 교수(국문학) : 90년대 들어 "거대담론의 시대는 갔다"느
니, "포스트 모더니즘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모두들 가볍고 작은 것을 찾아 
떠나갈 때 시선을 화끈하게 우리의 안쪽으로 돌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서울
대 조동일 교수이다. 그는 우리시대 보기 드문 패기의 인문학자이다. 그
는 "이제 우리가 거대이론을 만들 때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
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거대이론이 더 이상 소용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합
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의 성격변화와 더불어 거대
이론을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해야 합니다. 저쪽에서 해가 지면 
이쪽에서 해가 떠야 합니다" (월간 "말"지, 97년 1월, 200쪽).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학문 현실을 깊이 반성하고 "창조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학계의 풍토를 크게 4개 학풍으로 나누고 있는데, 
첫째가 수입학(남의 학문 가져와서 자랑하기)이요, 둘째는 시비학(남의 학문 
가져와서 나무라기), 셋째는 자립학(우리학문으로 남의 학문 막아내기), 넷째
가 바로 창조학(우리 학문으로 남의 학문 넘어서기)으로 진정한 우리 국학은 
창조학의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인문학문의 사명, 서
울대 출판부, 1997, 30∼31쪽 참조). 그러면서 조동일 교수는 오늘 우리의 학
문풍토는 남의 학문을 가져와서 광을 파는 "수입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개탄한다.
논자는 조동일 교수 자신의 창조학 패러다임으로서 "생극론(生克論)에는 흔쾌
히 동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우리 인문학의 도약을 위해서는 조동
일 교수 같은 패기의 인문학자가 많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③김영민 전주 한일장신대 교수(철학) : 김영민 교수는 자신이 서양철학 전
공자이면서도 어느 누구보다 신랄하게 동료 서양철학 전공학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학자이다. 패거리 의식을 가진 서양철학 전공자 입장이라
면 그에 대해 "배신자"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만 할 것이다.
그가 1996년에 펴낸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간)는 글쓰기
의 혁신을 앞에 내걸고 학문전반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기지
촌의 지식인들 - 탈식민성과 우리학문의 자생성"(55∼102쪽) 부분은 우리의 
학문현장을 미군이 주둔하는 기지촌에 비유하고 있는 통렬한 풍자의 한 마당
이라고 할 수 있다. "국문학자"인 조동일 교수조차 "풍자문의 명편으로 길이 
칭송될 만한 글"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기지촌 지식인"이라는 말이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게 된 것은 바로 김영민 교수의 글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김영민 교수가 또 다른 저서에서 그들 "기지촌 지식인"들과 함께 했던 지난 
세월의 환멸감을 절절하게 토로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만약 패권의식
에 젖어 있는 서양철학 전공자들이 본다면 아마도 이런 "희대의 배신자"에 대
해 열받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하이데거의 졸개들, 비트겐슈타인의 꼬붕들, 데리다의 애첩들, 듀이
(J.Dewey)의 하수인들, 하버마스의 대리인들을 상대로 그들이 짜놓은 규칙을 
좇아 무료하고 소득 없는 입씨름을 벌려야 하는 처지에 나는 늘 절망할 수밖
에 없었다. 졸개들끼리 모여서 충성의 등급을 정하고, 승급을 위해 충순하게 
짖어대는 놀음을 나는 경멸하고 또 경멸했다. 주인들이 코풀고 버린 휴지를 
화두처럼 붙안고 영감과 통찰을 기대하며 깽깽거리고 있는 경비견들의 희망
에 나는 결단코 동참할 수 없었다."     
<김영민, 자색이 붉은 색을 빼앗다. (동녘, 2001), 178쪽> 


④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 : 4인방 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양철학 전공학자
이다. 이승환 교수는 흔히들 간과하고 있는 유학사상의 실천 철학적 성격  내
지 사회 철학적 성격에 특별히 주목하여, 유학사상의 현대적 해석의 지평을 
확대하고자 노력하는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대표적 산물이 
1998년도에 펴낸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 (고려대 출판부 간) 이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환 교수는 동양철학 전공자이지만 결코 자기 전공에 매몰된 사람은 아니
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사상이 시대와 역사를 넘어서는 
초역사적 진리를 담지하고 있다고 여기는 '근본주의'의 입장에 반대하며, 또 
유가사상이 현대 사회의 모든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대중을 호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