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敬의 사상가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존재인 하늘을 향하여 자신을 각성하고 향상하는 자세가 敬이다. 이러한 敬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엄숙하게 단속하는 것이요, 항상 마음이 깨어 있는 것이며, 하나에 집중하여 관심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敬은 유교적 삶을 관통하는 방법이며, 인간이 하늘과 만날 수 있는 기본 방법이기도 하다.”
                                             - 금장태 서울대 교수-



           <목차>


1, 퇴계 사상의 기본 구도 &#8211; 이론과 실천의 조화
2, 성리학에서 敬의 위치 
3, 敬이란 무엇인가 
4. 퇴계 敬사상의 실천적 의미 
5. 여론(餘論) - 노무현 정부의 과거청산 작업과 퇴계의 교훈




1, 퇴계 사상의 기본 구도  - 이론과 실천의 조화



퇴계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학자의 이미지이다. 좋게 말하면 ‘순수한’ 학자. 나쁘게 말하면 현실과 담을 쌓은 상아탑 속에서 관념적 이론에 몰두한 고리타분한 학자. 어쨌건 오늘날 그에게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분투하는 개혁가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이룩한 학문적 업적 외에 그가 수행한 역사적 실천에 주목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현실정치에서는 소극적이요, 난국에 처해서는 도피적이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흔히 16세기 개혁의 화신 정암 조광조와 비교하여 퇴계의 소극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조광조처럼 어려움에 처한 현실에 뛰어들어 과감하게 개혁을 실행함으로써 난관을 정면 돌파하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지성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혹자는 한 때 적극적이던 조선의 사풍(士風)이 쇄락한 데 대해 퇴계에게 책임을 묻기도 한다. 
 
 “조선사상사에 있어서 정암과 퇴계는 양대 대립된 존재로서 그 두 시대에 사풍(士風)이 전연 다른 것이 있습니다. 정암 때는 정암부터 그렇지만 모두 젊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네들은 그 공부를 가지고 직접 사군택민(事君澤民)하는 데 실천을 하려 했지만 퇴계 이후부터는 심(心), 성(性), 정(情) 토론만 했지 어디 직접 정치에 공헌한 것이 무엇인가요?”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퇴계를 피상적으로 이해한 데서 오는 것이다. 퇴계는 결코 이론에만 천착한 사람이 아니다. 주자학을 조선화시킨 그의 학문적 공헌이 너무나 돋보인 탓인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그의 실천도 만만치 않았다. 퇴계 자신 지행병진(知行竝進)이라 하여 이론(知)만큼이나 실천(行)적 측면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
퇴계의 실천은 조광조와 같은 정치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조광조처럼 강렬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실효성 있는 방식이었다. 그의 실천은 문화적인 것이었고, 점진적인 것이었으며 장기적인 것이었다. 좌파적인가 하면 우파적이었고, 진보적인가 하면 보수적이었다. 그래서 마치 그의 실천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광조는 실패했지만 그는 성공했다. 그는 학문과 교육을 통해서 ‘훈구에서 사림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공을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퇴계에 대한 편향된 이해 방식은 사상을 보는 데에도 여지 없이 나타나고 있다. 흔히들 그의 사상하면 리기론(理氣論)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리기이원(理氣二元)이니, 리기호발(理氣互發)이니 하는 개념들이 주는 공리공론성을 지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리기론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그런 혐의를 받을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그것이 다가 아니다.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추구하는 그의 신념은 사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의 리기론은 실천을 전제로 한 인간관이요, 세계관이다. 그의 리기론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그의 이상이 집약되어 있다. 그것이 그 특유의 ‘理의 철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理(인의예지)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그의 유명한 理發說은 理의 현실화에 대한 강력한 요청의 표현이다.
그 理를 어떻게 조선의 현실에 구현할 것인가. 퇴계는 理에 대한 인식과 탐구만큼이나 理를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것이 바로 ‘敬의 철학’이다. 그 자체로는 관념이요, 가능성에 불과한 理는 敬에 의해서 비로소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퇴계는 理의 구현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자신의 학문을 ‘성학(聖學)’이라 이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성학은 敬에서 시작하여 敬에서 끝난다.”

퇴계는 ‘敬의 사상가’라고 불릴 정도로 敬은 그의 학문과 삶을 관통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理發說을 중심으로 한 리기론만을 가지고 그의 사상을 논한다면 우리가 보는 것은 관념의 퇴계요, 반쪽짜리 퇴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 이상과 같은 전제 하에 아래에서는 퇴계 사상에 있어 실천의 중심 개념 징표인 경(敬)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