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퇴계와 주희의 차이(1) - 12세기 남송과 16세기 조선의 차이



‘모든 사상가는 그의 시대의 아들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주희 역시 자신의 시대를 초월해서 사유했던 사람이 아니다. 주희가 살았던 12세기 남송의 현실은 어떠했으며 그는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송나라는 서기 960년, 5대 10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통일하고 건국한 나라이다. 하지만 북방은 이민족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고 수시로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엔 거란족이 세운 요(917-1125)에 당하다가, 나중에는 요의 동북변방에서 흥기한 여진족의 금(1115-1234)으로부터 끊임없는 시련을 겪게 된다. 마침내 금에 의해 수도(개봉)가 함락되고, 송은 남쪽으로 쫓겨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남송 시대(1127-1298)가 시작되는데, 이는 주희가 태어나기 3년 전의 일이었다. 이후 몽골족의 원에 의해 금이 멸망할 때(1234)까지 남송은 금의 지속적인 압박 아래 놓이게 된다.
이처럼 밖으로는 외적의 침략을 받아 국세가 풍전등화의 지경에 이르고 있을 때 안에서는 어떠했는가. 정부는 무능하였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있었다. 부패한 관료들은 뇌물수수, 공금횡령, 친인척 관직 등용 등 온갖 비리를 자행하였다. 위기의 시대였다. 그럼에도 시대를 구원하여야 할 지식인들은 불교, 도교와 같은 허무적멸의 사상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시대 주희는 무엇을 생각하였는가. 그릇된 시대는 그릇된 학술이 원인이라고 보았다. 주희가 생각하기에 당시 오랑케의 득세와 정부의 무능력 그리고 도/불의 융성은 심각한 정신적, 도덕적 침체 상황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은 참다운 학술을 통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맹자 이래 끊어진 위대한 중국의 도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맹자가 몰(沒)한 이후 송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상적 상황을 주희는 이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맹자가 돌아간 이후로, 속유(俗儒)의 기송사장(記誦詞章-훈고학과 사장학)의 풍습은 그 공들임이 소학(小學)보다 배나 되지만 쓸모가 없었고, 이단(異端)의 허무적멸(虛無寂滅-불교와 도교)한 가르침은 그 고상함이 대학(大學)보다 지나쳤으나 실질이 없었다. 그 밖의 권모술수의 공명지설(功名之說-법가의 공리주의) 및 백가중기(百家衆技-기타)의 유파가 세상을 유혹하고 백성을 속이며 인의(仁義)를 가로막음이 그 사이에 어지럽게 섞여 있어서, 지도자들로 하여금 불행하게도 대도(大道)의 요점을 듣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불행하게도 지극한 다스림의 혜택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

주희가 꿈꾼 것, 그것은 르네상스의 기획이었다. 그에게 있어 맹자 이후 지난 천년의 역사는 중국 역사의 암흑시대였다. 그는 서양의 르네상스가 그러했듯 (아니 서양보다 한참 앞서) ‘고전의 재발견과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들어맞는 신유학의 거대담론을 기획했다. 유교적 가치의 부활만이 위기의 시대를 구원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그의 기획에 있어 최대의 적수는 불교였다. 불교는 남북조 및 수, 당을 거치면서 당시 지식인들을 매혹하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유교가 묻기를 꺼렸던 죽음이나 실존과 같은 인간의 궁극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또한 중국에 전래되어 발전된 대승 불교는 유교를 능가하는 체계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특히 가장 유력한 종파였던 화엄종과 선종의 경우는 장대한 이론, 정밀한 사변, 약동하는 실존적/실천적 계기 등에 있어서 말라비틀어진 훈고학 스타일의 유교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측면을 내포하고 있었다. 주희 자신 젊어서 불교의 선(禪)에 빠져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가르침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글이나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불교가 당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자.

“어른, 아이, 관리, 농부, 상인, 남자, 여자 누구든지 모두 불교의 문하로 들어가고 있다.”

“비록 몇몇 집안이 불교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한두 세대 동안은 자신의 힘으로 맞설 수 있더라도, 삼대에 이르면 반드시 불교에 의해 교화된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그들은 모두 불교에 이끌리고 있다. 그만한 해악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주희가 걱정한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지식인에게 갖는 호소력이었다. 지식인들이야말로 유학의 도를 중흥시키기 위해 주희가 의지해야 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유교의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불교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를 위해 취한 주희의 전략이 흥미롭다. 그것은 불교의 장점을 취하면서 불교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불교 안에 있는 비현실성(피안성)과 탈세속성을 부정하면서도 그 장점을 흡수하여, 불교와는 다른 방법으로 유교를 세련된 형이상학을 가진 사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그는 도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전략을 취하였다. 신유학의 방대한 스케일은 도교의 우주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주희는 이런 작업을 ‘북송오자’의 선행작업을 집대성함으로써 이루어내었다. 주돈이, 소옹, 장재, 정호, 정이 등 소위 ‘북송오자’는 불교, 도교의 이론을 빌어 유학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주돈이(1017-1073)………

             소옹(1011-1077)…………
  
             장재(1020-1077) …………             주희(1130-1200)

             정호(1032-1085)…………

             정이(1033-1107)…………



주희는 정이가 주장한 ‘성즉리(性卽理)’라는 대전제 아래 이들 북송오자의 사상을 유기적으로 종합함으로써 불교, 도교에 필적하는 웅대한 스케일과 정밀한 체계를 가진 사상으로 유교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주자학’이요, ‘성리학’이며, ‘신유학’이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유학은 불교의 형이상학과 도교의 우주론을 수용한 것이어서 겉은 유가이지만 속은 불가요 도가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누가 말했던가. 사자 뱃속에 들어간 토끼는 더 이상 토끼가 아니라고.
주희의 작업은 성공적이어서 이후 이 새로운 유학은 누대를 풍미하고 있던 불교, 도교의 위세를 떨쳐 버리고 중국 대륙은 물론 이웃 한반도로, 일본 열도로, 그리고 베트남으로 영향력을 확산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 위대한 종합자, 주희(1130-1200)

주희는 흔히 북송 성리학의 집대성자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북송 성리학만을 집대성한 것이 아니다. 북송 이전의 한당 경학과 유학에서 나아
가 노자와 불교, 또 사상에서 나아가 문학과 사학, 심지어 자연과학에 대해서까지 관심
을 두어 해박한 지식을 가졌으며, 이 모든 것이 음으로든 양으로든 그의 집대성 속에 
포함된다. 그야말로 이전까지의 모든 학술과 사상을 자기 사상의 체계 속에서 집대성
하였던 것이다. 그의 학술은 뒷날 관학의 자리를 차지하여 중국 근대에 이르기까지 절
대적인 지위를 누렸지만 순수하게 학술적인 면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다. 그는 중국 사
상사에서는 물론이고 중국학술사와 문화사 방면에서도 분수령과 같은 존재다. 그 이전
은 모두 그에게로 모이고 그 이후는 모두 그로부터 다시 발원한다. 계승자는 물론이
고 비판자도 그를 비판함으로써 자기 사상을 전개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사상은 한
국과 일본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당시 동아시아의 보편 이념이자 보편 사상이요 보편
적 세계관으로 기능하였다.


퇴계는 바로 이러한 주자학의 영향권 아래서 성장한 사람이었다. 퇴계가 주자학을 만나게 된 구체적 사연은 어떠했을까? 
주희가 12세기 남송의 아들이었다면, 퇴계는 16세기 조선의 아들이었다. 퇴계 역시 자신의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퇴계의 시대는 아시다시피 ‘사화(士禍)’의 시대, 소위 훈구-척신이라는 특권층들이 정치 현실을 주름잡고 비판적인 사림들을 탄압하던 때였다. 특히 이들 특권층에 맞서 일전을 벌였던 정암 조광조가 패하여 독배를 받은 기묘사화 때 퇴계의 나이 19세, 바로 이 조광조의 실패가 퇴계의 문제의식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퇴계가 조광조의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은 정치투쟁이 가진 한계였다. 그는 시대의 위기는 사상을 통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주목한 사상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주자학이었다.
그는 철학을 세움으로써 시대정신이 바로 사림세력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그것은 정신적 기선 제압이요, 철학을 통한 청산과 쇄신 작업이었다. 그가 주자학을 선택한 것은 주자학이 그러한 실천적 목적에 적합한 논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자학이 담고 있는 理 우위의 논리가 그것이었다.

주희와 퇴계는 자신의 시대를 위기라고 보았으며, 그 위기를 사상을 정립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같다. 그런데 그들의 차이는 무엇이었는가. 주희는 당대를 지배하고 있던 불교적 세계관에 맞서 새로운 거대담론을 ‘창출’하였다면, 퇴계는 후발주자로서 주희가 세운 이론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말하자면 주희는 북송오자의 학설을 집대성하여 주자학(성리학)이라고 하는 거대담론을 확립하는 데 온 생애를 바쳤다면, 퇴계는 주희가 세운 거대담론을 하나의 의미 있는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 현실적/실천적 운용에 집중적 관심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주희의 직접적 투쟁 대상은 불교였지만, 퇴계에게 있어서는 훈구-척신이라는 현실의 거악이었다. 불교는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삼봉 정도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