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가 영화 ‘식코’를 통해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누구인가?’입니다. “소방서와 경찰은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료 역시 생사가 걸린 문제다. 병원에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나와 한 배를 탄 다른 국민들 역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기다리겠다. ‘나’가 아니라 ‘우리’를 생각해야 한다.” 

'나'를 생각하는 것이 칠정의 영역이라면, '우리'를 생각하는 것이 사단의 영역입니다.
영화 식코는 퇴계의 이론으로 말하면 사단이 무기력할 때 어떤 일이 일이 벌어지는가를 (미국 의료시스템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이 칠정에 굴복하는 모습은 근래 삼성 사건에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칠정의 로비 앞에 청와대, 검찰, 재경부, 금감원, 국세청, 언론, 국회의원 등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사단의 거성들이 모조리 꺼꾸러져 갔었지요.
삼성스캔들에서 퇴계가 개탄하는 것은 삼성의 어두움 그 자체가 아닙니다. 퇴계는 삼성의 일탈에 대해서는 그다지 놀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퇴계 이론에 의하면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궤적은 칠정의 전형적인 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퇴계는 칠정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래는 선하지만 악으로 흐르기 쉽다."

퇴계의 이론은 칠정의 타락 가능성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칠정의 세력은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칠정이 타락할 때 우리는 희망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 퇴계에 의하면 희망은 사단에게 있습니다. 사단은 공적인 영역, 즉 '우리'의 영역입니다.
칠정의 일탈에 대해 사단이 침묵하고 굴복한다면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요, 사회도 건전한 사회가 아니요, 국가는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닙니다.

"영화 식코 감상-미국의 민간의료보험에 엮이지 마라"는 퇴계식으로 말하면 칠정의 세력이 발호하는 하 수상한 이 시대 '사단의 각성'을 촉구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