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중앙일보 2008년 5월 13일자 칼럼, "왜 그랬을까'의 한 대목.
퇴계의 사단칠정론을 연상케 하는 주장이 있어 흥미롭다.


"어지간히 밝혀졌듯, 광우병 공포의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그런데 그것은 20일간 겪은 난리의 인화물일 뿐 발화점은 아니다. 누가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고 누가 시위를 부추겼는가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발화점은 ‘쇠고기 전면개방’을 국회와 집권당과의 사전 상의 없이 전격적으로 해치웠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도 행정부의 권한에 속하기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정체성을 버려가며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권이 쇠고기의 월령 제한, 특정 위험물질 부위 규제, 위생과 동물성 사료 여부에 관한 최소한의 검역권을 넘겨주지 않았던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발병률이 억만분의 1이라도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국민정서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번에는 쇠고기 전면개방에 ‘기업 논리’가 승했을 뿐, 국가 논리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의아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송호근 교수가 말하는,

'국가논리'...... 사단의 논리(理發)

'기업논리'.......칠정의 논리(氣發)



"사단칠정론은 사단과 칠정이라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논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내면의 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어떻게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 경제적 현상을 다루는 데 적용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저 앞에서 (제3장 ‘사단칠정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 참조) 나름대로 충실히 거론한 바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 핵심 내용을 여기서 다시 언급하면 이렇다.
필자는 이 사단칠정론을 사단과 칠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공(公)과 사(私)의 문제를 해명한 것으로 본다. 우선 필자는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나누어보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고봉은 사단과 칠정이 다 같은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그 리기론(理氣論)적 구조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왜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굳이 구분하고자 했을까?
이들 감정이 표출되는 상황을 검토해 보면 퇴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즉 4단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인 반면에, 7정은 꼭 대인관계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면 4단은 타인과의 관계를 전제로 할 때 나타나는 감정이지만, 7정의 경우는 혼자 있을 때도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다음 4단과 7정의 정의를 유심히 음미해보자.

* 사단
측은지심 - 남의 어려움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 -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 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 -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 -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마음

*7정 
희(기쁨), 노(성냄), 애(슬픔), 구(두려움), 애(좋아함), 오(미워함), 욕(욕심) 


그러니까 퇴계는 이들 사단과 칠정이라는 감정이 생성되는 사회적 맥락에 특별히 주목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활동 영역을 크게 ‘공(公)’과 ‘사(私)’로 나눌 때 4단은 공적 영역을, 7정은 사적 영역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엄격히 구분해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공(公)과 사(私)에 통용되는 논리가 엄연히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퇴계의 사단칠정론을 공사(公私)의 논리로 치환한다면 이렇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사단(공적 영역) - 理發而氣隨之 (리가 발함에 기가 뒤따른다)
칠정(사적 영역) - 氣發而理乘之 (기가 발함에 理가 올라탄다)

이는 공적 영역에서는 理가 주도권을, 사적 영역에서는 氣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사단과 칠정을 공(公)과 사(私)의 코드로 읽는다면, 사단칠정론은 단순히 인간 내면의 심리 현상을 다룬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공과 사가 뒤얽힌 현실세계를 독해하는 데에도 유용한 방법론일 수 있다. 정치, 경제, 법치 등 인간의 행위가 작용하는 모든 사회적 영역에도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역시 사단과 칠정의 구도로 포착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바로 칠정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사(私)적 영역을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칠정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내적 논리요, 사단은 자본주의의 부작용과 폐해를 교정하는 논리 혹은 자본주의의 건전한 운영을 보장하는 논리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 미래를 여는 책, 2008, "제4부 5장, 자본주의 시대와 퇴계' 348-353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