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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혁명
- 퇴계, 21세기에 도전장을 던지다-


<머릿말>
퇴계를 세상 밖으로,
21세기의 현실 속으로



- 지금 이 시대에 퇴계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 그것은 혁명이다. 퇴계를 무시하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 사고방식을 전복하는 것이요, 퇴계를 가두고 있는 거대한 고정관념과의 투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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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봄에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퇴계를 사회과학(행정학, 법학)을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쓴 책이었다. 지금까지는 주로 인문학의 울타리 안에서 논의되어온 퇴계를 나는 바깥 세상의 시각에서 실용적, 실천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나는 관념적이고 난해하다고 알려진 퇴계의 성리학(性理學)이 헌법과 법치주의 관점에서 보면 의외로 그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옴을 알리고 싶었다. 예를 들면,

&#9642; 주자학, 양명학과 구별되는 퇴계학의 정체성은 헌법 제1조의 비유로,
&#9642; 퇴계의 성리학은 ‘사법(司法)의 철학’으로
그리고 그의 대표적 브랜드인 리발(理發)은 사법적극주의로,
&#9642; 사단칠정론은 헌법 제119조 경제 조항과 관련하여,
&#9642; 경(敬)의 사상은 헌법 제103조 법관의 양심 조항과 관련하여,
&#9642; 성학십도(聖學十圖)는 법관의 길을 제시하는 저술로 평가하고 해석하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동양철학에는 거의 문외한이었다. 그러던 내가 우연한 계기로 퇴계의 사상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이후 10여 년의 세월을 퇴계의 현대적 의미를 찾는 데 쏟아왔다. 

그런데 내가 이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퇴계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 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공을 가리지 않았고, 보수와 진보, 제도권과 재야를 불문했다. ‘고리타분하다’, ‘보수적이다’, ‘소극적이다’, ‘관념적이다’, ‘퇴계를 논하는 건 이 시대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견해는 기본이고, ‘사대적이다’, ‘모방적이다’, ‘편협하다’, 심지어는 ‘퇴계학의 강조는 일제 식민사관의 강조에 불과하다’, ‘양반 지배질서의 기반을 닦은 유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노비를 부리며 살았던 귀족이다’, ‘퇴계 성리학은 친일-친미-반공 독재자들의 충효교육 및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이용됐다’ ‘이조 봉건사회의 통치제도와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전적으로 복무한 가장 반동적인 철학 사조를 일으킨 인물이다’ 등등 끝이 없었다.

대부분 권위와 명성을 가진 지식인들이었고, 영향력 있는 저술가들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들도 있었다. 이들이 이러할진대 정치, 경제, 언론, 법치, 문화 등 우리 사회 일선에서 활약하는 파워엘리트들의 퇴계관은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들 중 존경하는 인물로 퇴계를 꼽은 사람을 나는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 이들의 뿌리 깊고 완강한 부정적 퇴계관을 목격하면서 퇴계를 오늘에 되살린다는 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퇴계를 세상 밖으로, 21세기의 현실 속으로’라는 표어 아래 퇴계학의 블루오션을 개척한다는 포부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나의 작업이 과연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회의가 든 것은 당연했다. 퇴계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그려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현실에 드리워져 있는 이 거대한 인식의 장막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퇴계를 살리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실망스러운 것은 퇴계학계의 모습이었다. 퇴계에 대한 비판은 무성한데, 퇴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면 그러한 비판에 맞서 퇴계를 적극 변호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퇴계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퇴계학계의 연구 논문은 쌓여가도 ‘터무니 없는’ 비판의 글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퇴계학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세상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는 듯하다. 해마다 거창한 학술대회가 열린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만의 잔치였을 뿐이었다. 

이때, 나의 뇌리를 스친 사람이 바로 조선 건국의 주역 삼봉 정도전이었다. 5백년 불교왕국 고려가 전복되고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이 마침내 건국되었음에도 왜 삼봉은 『불씨잡변』이라는 불교 비판서를 써야 했을까. 새로운 질서는 옛 질서의 타파와 청산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직 사회의 저변에는 불교의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삼봉이 『불씨잡변』을 완성한 때가 태조 7년, 이방원(태종)에게 살해당하기 불과 3달 전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건설의 논리와 청산의 논리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걸 삼봉의 극적인 삶은 가르쳐주고 있었다. 퇴계의 경우에도 퇴계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현대화 작업은 물론 반(反)퇴계에 대한 투쟁 작업도 함께 이루어져 한다. 말하자면 21세기 퇴계판 『불씨잡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나는 퇴계에 대한 현대적 해석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세간의 퇴계 비판론에 맞서 퇴계를 변호하는 작업을 병행해왔다. 사실 나는 퇴계학에는 아마추어 연구자였다. 나는 나홀로 소송하는 사람이 밤을 새워 법전을 찾고 법서를 뒤지며 변론서를 작성하듯, 퇴계에 대한 무수한 참고문헌을 열람해가며 비판자들에 대한 반론의 글을 메모해왔다. 그것을 정리해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앞서 출간한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가 적극적으로 퇴계를 조명한 책이라면, 이 책은 퇴계 비판자들에 대한 반론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퇴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2


이 책의 구성에 대해 소개하면 이렇다.

이 책은 퇴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다. 비판자들을 선택한 기준은 대중적 명성과 학계의 권위, 언론 보도에 두었다. 즉 인기 있는 저술가라든가, 학계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다든가, 언론에 중요하게 다루어진 글을 대상으로 했다. 이를테면 대중들에 대한 영향력이 중요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글이 대중들의 퇴계관을 오도할 위험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공의 범위는 일단 문학, 역사, 철학 분야를 아우르는 인문학계로 한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서양철학, 동양철학, 한국철학, 국사학, 한문학, 중문학 등을 전공한 학자들이다. 정치, 경제, 법조, 언론, 과학계 인사들의 퇴계관은 더 황당한 사례도 많지만, 그들에게 퇴계는 전공상 인문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2차적이라는 걸 감안하여 유보하였다. 예외적으로 경제학 전공의 한 진보 논객의 글도 다루었는데, 그것은 그의 책이 대입 논술 준비서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있어서 청소년들의 퇴계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퇴계 비판의 내용 면에서도 되도록 중복을 피하면서 다양하게 배열하였다. 퇴계가 아예 연구 가치가 없다는 주장(서양철학 전공학자들)에서부터 보수적이다, 모방적이다, 소극적이다, 이론 편향적이다, 편협하다, 독선적이다, 관념적이다 등등 여러 측면에서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이 책은 담고 있다.

특별히 내가 신경을 쓴 것은 국사학자들의 견해를 다룬 부분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퇴계관 자체보다 관점의 문제가 특히 심각함을 지적했다. 그들의 관점을 나는 ‘오율주의’라고 명명했다. 두계 이병도 박사 이래 국사학계에 만연된 ‘오로지 율곡이 최고’라고 하는 율곡 중심주의가 퇴계에 대한 인식을 오도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율곡을 ‘조선 성리학의 완성자’라 하여 조선시대 사상사의 최정점에 있는 사상가라고 전제한 다음 상대적으로 퇴계를 본다. 심지어 율곡이 퇴계를 보는 눈으로 퇴계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율곡은 진보요 퇴계는 보수, 율곡은 현실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반면에 퇴계는 소극적 도피적이며, 율곡이 주자학에 대해 독창적이라면 퇴계는 충실한 답습자라는 식으로 두 사람을 대비한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러한 오율주의를 비판하면서 퇴계를 율곡의 눈으로 혹은 율곡 편에 서서 보지 말고 퇴계를 ‘직접’ 사유(思惟)할 것을 주장한다. 

끝으로 퇴계관 비판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우리 의식을 지배하면서 퇴계를 폄하하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의 글도 두 편 수록하였다.


3


나의 견해에도 물론 오류는 있을 것이다. 내가 날린 비판이 부메랑처럼 돌아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판당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그 누가 말했던가. 가장 불행한 책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책이라고. 아무쪼록 비판에 비판이 이어지면서 이 시대 퇴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혁명이 일어나기를. ‘퇴계 혁명’이.


2008년 10월 어느 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