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앞에서 기당 현상윤의 <<조선유학사>>에 서술된 퇴계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퇴계가 결코 이론편향의-소극적-현실도피적 인물이 아님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혹시 이 글이 기당 현상윤의 인물과 그 업적 자체를 폄하하는 뜻으로 비칠까 두렵습니다.
기당 현상윤은 일제 치하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유학이 망국의 이데올로기로 지탄받던 그 황량한 정신문화계에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외친 외로운 선각자였습니다.
그가 1950년 납북되기 직전에 쓴 글에 보면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근래 세인(世人)들이 흔히 유학을 가리켜 고루하다, 완고하다, 진부하다 하여 이것을 경시하고 배척하고, 또 조선 5백년의 쇄망을 볼 때에 그 책임이 전혀 유학사상에 있다하여 이것을 공격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유학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하며 또는 그 말폐(末弊)만을 보는 데서 기인되는 오해다." 
<기당 현상윤 문집,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0), P.486에서 재인용> 

그리고 <조선유학사>의 끝에서도 그는 조선의 패망을 조선 시대 말기에 누적된 말폐에 기인한다고 하였지만 그 말폐는 유교 자체의 책임이 아니라 유학을 응용한 '조선 사람의 책임(잘못)임'을 천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정암 조광조를 비롯한 일단의 젊은 기묘사림들을 중심으로 한 "지치주의至治主義"계열을 특별히 주목하여 독립된 장으로 다루고 있는 것만 보아도 유학의 본령을 현실변혁을 지향하는 실천성에 두고 있는 그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그 실천을 <정치적> 영역에 한정하여 퇴계의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실천행위를 간과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것은 일제치하와 해방공간이라고 하는 무엇보다 "적극적 액션이 요구되던" 자신의 시대적 한계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기당 현상윤과 그의 대표적 저서 <조선유학사>에 대한 소개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다음은 고려대 윤사순 교수(명예교수)가 "우리 사상 100년"(현암사, 2002)이라는 책에서 기당 현상윤이 저술한 <조선유학사>의 내용과 의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옮겨온 것입니다. 


<<현상윤의 조선유학사 서술>>


성리학이나 실학은 물론이고, 조선 유학 전체에 대하여 편견과 선입견 없이 객관적 변별력을 가지고, 역사적 흐름을 학문체계로 정리한 것은 1949년에 출간된 현상윤(玄相允, 호 機堂, 1893~?)의 <<조선유학사>>(뒤에 "한국유학사"로 개칭)이다. 3.1운동에 가담하여 결정적인 업적을 이루어 '48인의 하나'로 지목받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인 동시에, 고려대 초대 총장으로 재임하다가 납북된 그는 광복 후 조선의 유학사를 누구보다도 먼저 집필하여 간행하였고, 그것은 체계적인 조선 유학사의 효시라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획기적인 저술이다.

현상윤은 이 책의 서론에서 '조선 유학의 본질', '조선 유학의 조선 사상사에 끼친 영향', '조선 유학의 동양사 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먼저 밝힌다. 그에 따르면 조선 유학의 본질에 해당하는 주류와 중축은 '철학 방면인 정주학' 즉 정주계 성리학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신라-고려 유학에 대해서는 약술하고, 조선 시대 성리학의 소개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조선 사상사에 끼친 조선 유학의 영향을 그는 '공'과 '죄'로 분별하여 지적하였다. 
공은 (1) 군자학의 면려, 곧 이상적 인간인 군자가 되는 것을 힘써 장려한 것, (2) 인륜 도덕의 숭상, 곧 오륜의 도리 등을 충실히 행하게 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 생활을 원활케 한 것, (3) 청렴 절의의 존중, 곧 청렴과 절의를 생명처럼 중요시하도록 하여 많은 청백리를 배출한 것을 들었다. 
반면에 조선 유학의 죄는 (1) 모화 사상, (2) 당쟁, (3) 가족주의의 폐해, (4) 계급사상, (5) 문약文弱, (6) 산업능력의 저하, (7) 상명주의尙名主義, (8) 복고 사상이라고 하였다. 
조선 유학을 변별의 시각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가 특히 여기서 드러난다.

동양사에서 차지하는 조선 유학의 위치란, 첫째 유교의 이상 정치와 이상 사회를 실현하려던 실천력이 뛰어나 중국의 어느 시대보다도 우수한 성과를 이룬 것, 둘째 중국 송-명 시대의 성리설보다도 우수한 이론을 내어 일본 등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는 전에 볼 수 없던 조선성라학에 대한 높은 평가로서 타당성을 논외로 할 경우,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원>>에서 보여준 조선 유교에 대한 성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임이 분명하다. 

전체 17장으로 된 이 책의 내용 역시 장지연의 것보다 풍부하고 다채롭다. 예를 들면 15세기 말엽(16세기 초반이?-조사연)의 조광조의 정치사상을 독립된 장으로 다루었으며, 16세기 서경덕-이언적-이황-조식-이항-김인후-기대승-이이-성혼-장현광의 이론을 사실상 조선성리학의 핵심으로 상술하였다. 그리고 17세기 예학과 당쟁의 예송적 성격을 밝혔으며, 18세기의 호락 논변을 충실히 다루었고, 17~18세기의 실학파 대목에서 이익-정약용과 북학파인 박지원-박제가의 사상에 비중을 두어 다루었다. 또 서학의 전래와 영향을 간과하지 않았으며, 19세기의 위정척사 운동을 비교적 충실히 서술하였다.

그러나 실학사상을 다만 경세론으로 파악하여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약어인 '경제학'으로 다룬 것은 연구의 한계를 보인 것이고, 양명학 부분도 그 전보다 상술되었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의 약점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흐름을 다카하시 도루가 시도한 '주리(主理)-주기(主氣)의 기준'으로 살핀 것도 오늘날 일부 학자들로부터 그의 시각의 한계로 지적받는 점이다.

현상윤은 이 책의 끝에서 조선의 패망을 조선 시대 말기에 누적된 말폐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말폐는 유교 자체의 책임이 아니라 유학을 응용한 '조선 사람의 책임(잘못)임'을 그는 암시적으로 간명히 천명하였다. 이것은 장지연과 같은 견해이지만, '유학 자체에 대한 오해'를 씻어버리려는 그의 보다 더 강렬한 의지의 표명으로서 기억될만한 발언이다.

현상윤은 총장직을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조선 사상사'를 정규 교과목에 넣어 직접 강의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7년경부터 그가 최초로 조선 사상사를 교과목으로 개강한 것만으로도 한국 사상 연구의 본격적인 발전을 가져 오는 데 하나의 획기적인 전기를 이루었다.

그는 <<조선유학사>>를 출판한 다음, 곧 <<조선사상사>>의 집필을 완료하여 원고를 출판사로 넘겨 초교까지 본 상태에서 한국 전쟁을 맞았다. 전란 중에 그는 납북되고 그 원고 역시 잃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원고의 복본을 자제가 찾아내어 목차와 상고-중고 편이 1963년 <<아세아연구>>에(이상은의 도움으로) 특재되어 그 대강이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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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윤사순 이광래 공저, "우리 사상 100년", 현암사, 2002, 201~205쪽 -


그리고 다음은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록된 기당 현상윤에 대한 프로필입니다.

<<현상윤(1893~?)>>

독립운동가. 교육가.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17년 후반경부터 동경에 있는 유학생들 사이에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행동통일에의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이때 현상윤 등은 유학생을 중심으로 구국독립운동의 구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를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하였다. 
1918년에 귀국하여 중앙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 시기 이광수는 중국에서 국내에 들러 그에게 국제정세를 보아 민족자결주의에 의한 독립운동을 벌일 것을 종용하였다.

1919년 손병희를 중심으로 '독립운도의 대중화,일원화,비폭력화'라는 3대 기본노선이 추진되었으며, 중앙학교의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독립운동계획이 추진되고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 유학생대표 송계백이 찾아온 이후부터 적극화되어, 독립운동 거사에 대하여 최린과 연결을 짓게 되었다. 천도교측이 제안한 독립운동의 일원화는 기독교,불교 등 종교단체와 학생대표가 호응함으로써 본격화될 수 있었다. 즉 현상윤의 주선으로 김도태가 나서서 기독교측 인사들과 합류에 성공하였다.

3.1운동은 천도교 15인, 기독교 16인 불교 2인을 합쳐 민족대표는 33인이지만, 이들 33인 외에 3.1운동의 계획과 추진에 중요한 구실을 한 인사 중에는 개인사정과 차후단계에서 그 운동을 지도하기 위하여 서명에서 고의로 빠진 인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현상윤 등 16인으로, 3.1운동이 끝난 뒤 붙잡혀 2년간 복역하였다. 출옥되자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1922년 1월 이상재를 대표로 하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 결성에 참여,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광복 후 경성대학 예과부장을 지냈고, 1946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다가 고려대학교로 승격됨에 따라 초대 총장이 되었다. 6.25 사변 때 납북되었다. 
저서로는 <조선유학사> 등이 있다.


<<기당 현상윤에 대한 참고문헌>>


1. 현상윤, <조선유학사>, 현음사, 1982

2. 현재경 엮음, <기당 현상윤 문집>, 경희대출판국, 2000, 

3. 이상은, "한국에 있어서의 유교의 功罪론-현상윤 선생의 '儒敎功罪論'에 대한 재평가" <이상은전집-한국의 철학(1)>, 예문서원, 1998

4. 윤사순-이광래, <우리 사상 100년>, 현암사, 2002

5. 임형택-강영주 편,<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 사계절,1996, 

6. 정신문화연구원 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