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쳐주시면..." 님께 


1. 퇴계가 스스로 지은 비문 (自銘)


퇴계는 1570년 12월 4일(양력으로는 1570년12월 31일) 조카 영을 불러 유언으로 이렇게 당부하였습니다.

"비석을 쓰지 말라. 작은 돌에다가 벼슬과 이력은 모두 없애고, 다만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쓰고, 뒷면에는 세계(世系)와 출처를 간단히 쓴 다음 내가 지어놓은 명을 쓰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실상에 없었던 일도 장황하게 쓸 염려가 있으므로 남에게는 맡기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흘 후 12월 8일, 퇴계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퇴계의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고 합니다.
"저 매화분에 물을 줘라."
퇴계가 세상을 떠나던 날, 이 날은 맑았는데, 저녁 유시 초(약 오후 5시경)에 갑자기 흰구름이 집 위에 모이고 눈이 3센티미터나 내렸다고 합니다. 퇴계는 누운 자리를 정돈시키고는 옆에서 부축하여 일으키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곧 구름이 흩어지고 눈이 개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님이 부탁하신 바, 퇴계가 스스로 지은 명(自銘)입니다.

"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生而大癡)
장성하여서는 병이 많았네 (壯而多疾)
중년에는 어찌 학문을 좋아했으며 (中何嗜學)
말년에는 어찌 벼슬에 올랐던고 (晩何도爵)
학문은 구할수록 멀기만 하고 (學求猶邈)
관작은 사양할수록 몸에 얽히네 (爵辭愈영)
세상에 나아가 실패가 많았고 (進行之합)
물러나 은둔하여 몸을 곧게 하였네 (退藏之貞) 
나라의 은혜에 깊이 부끄럽고 (深참國恩)
성인의 말씀이 참으로 두려워라 (亶畏聖言)
산은 높이 솟아 있고 (有山억억)
물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有水源源)
선비의 옷을 입고 한가로이 지내니 (婆娑初服)
뭇비방을 무시하였네 (脫略中산)
내 그리워하는 분 저멀리 있어 볼 수 없으니 (我懷伊阻)
나의 패옥(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서 한 일) 누가 알랴 (我佩誰玩)
내가 사모하는 옛 성현의 마음 (我思故人)
실로 내 마음과 맞는구나 (實獲我心)
오는 세상을 어찌 알리오 (寧知來世) 
현실에도 얻은 것이 없거늘 (不獲今兮) 
근심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고 (憂中有樂)
즐거움 속에도 근심이 있었네 (樂中有憂)
자연대로 살다가 돌아가노니 (乘化歸盡)
이 세상에 무엇을 다시 구하리 (復荷求兮)

- 이상의 퇴계 自銘 부분은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펴낸 "국역 고봉집(1)"(솔출판사 간)에 있는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옮긴 것입니다. 한문 원문 중 일부 한자는 제 컴퓨터 자전에는 없는 글자라서 한글로 대신했습니다. 고봉의 묘갈명(墓碣銘)도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 퇴계의 유언


비문에 관한 당부의 말과 함께 퇴계가 남긴 몇가지 유언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국장의 예를 이용하지 말라. 예조에서는 지난 예에 따라 국장의 예를 받으라 할 것이지만 너희들은 돌아가신 분의 유언이라 말하고 소를 올려 굳게 사양하라.

둘째, 기름과 꿀로 만든 (값비싼) 과자를 쓰지 말라.

셋째, (벼슬한 사람들이 세우는) 비석을 세우지 말라. 그저 크지 않은 돌의 앞면에는 (늘그막에야 도산에 물러나 숨어 산 진성 이공의 묘라는 뜻으로)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이라고만 새기고 뒷면에는 간단하게 고향과 조상의 내력, 뜻을 품었던 사업과 벼슬살이 모습 등을 옛 성현의 가르침에 맞게 간추려 적어라. 이를 위하여 나 스스로 초안을 잡아놓은 것이 있는데, 찾아내어 사용하라.

넷째, 내가 죽은 뒤에 친족들이 지켜야 할 상례를 법도와 예절을 아는 학식있는 어른들에게 물어서 지금 세상에도 마땅하고 옛날에도 틀리지 않을 도리를 찾아라.

- 이상은 퇴계탄신 5백주년(2001) 때 퇴계학연구원의 이윤희님이 펴낸 "퇴계선생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지영사) 125~126쪽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이상 조사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