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학자들의 견해에 이어서 이번에는 퇴계의 독창성을 거론하고 있는 외국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해 올리고자 합니다.


"퇴계의 독창성(2) - 외국 학자들의 견해"


(1) 陳來(중국 북경대 교수) - 퇴계는 주자학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황은 주희철학의 계승자이다. 理學 발전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점은, 이황이 주희의 어떤 사상을 다시 서술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희의 사상을 어떻게 발전시켰는가에 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이황은 주희의 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였으며, 주희의 철학이 지닌 어떠한 모순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인식하였다.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까지도 제시함으로써, 주희의 철학에 감추어져 있으면서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논리적 연결 고리를 드러내 주었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관점에서 볼 때, 주자학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있었다. 명대 중기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생명력있는 주자학자를 다시는 배출해내지 못하였다. 주자학이 명대 중기에서 청대까지 여전히 정통철학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당시 주자학은  중국에서 날로 생명력을 잃어가는 철학이었다. <心學>의 성행에 때맞춰, 가정(嘉靖) 연간 이후의 주자학은 진일보하여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활력을 조선에서 얻게 되었다. 퇴계철학의 출현은 조선 성리학의 완전한 성숙을 표명해 주는 것임과 함께 주자학의 중심이 이미 조선으로 옮겨져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 뒤 동아시아에서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이미 마련하고 있었음을 표명에 주는 것이다.”
<陳來 지음, 안재호 옮김,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1997), 475쪽> 


(2) 뚜 웨이밍(미국 하바드대 교수) - 퇴계는 자기 나름의 해석법을 통해 주희의 理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대가인 주자에 대한 그의 평가는 수동적 수용이 아닌 비판적 분석이었다.  

“… <한국의 주희>라는 퇴계의 역사적 이미지는 더 나아가서 그가 지금껏 자신의 독창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전수의 업적 때문에 뚜렷이 알려져 왔다는 인상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퇴계가 <주희노선>이라고 할 만한 것을 충실히 지키고 그것이 지닌 으미를 당시의 문화적 및 정치적 엘리트 계층과 주의깊게 토론함에 있어서 그가 매우 진지한 태도를 지녔다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가 결코 주희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은 보다 깊이 구명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만일 퇴계가 성취한 것이 주희의 사상을 조선에 전파한 문화전이 이상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는 동아시아 유학의 주건설자의 한 사람으로서 명예를 짊어지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비교분명적 관점에서 볼 때 유학에 있어서의 그의 공적은 동아지성사(東亞知性史)에서 한국 사상가들 가운데는 비교할 사람이 없을 만큼 탁월한 것이라 할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퇴계가 충실한 전달자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독창적 해석을 가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독창적 해석은 주희의 理사상의 원서술을 현저히 변개(變改)한 것이다.
퇴계가 자기 나름의 해석법을 통해 주희의 理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나는 理의 특성에 대한 그의 기술에 있어서 세가지 본질적 측면, 즉 動-發- 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한다. …”
<뚜웨이밍, “주자학에 대한 퇴계의 독창적 해석”, 퇴계학보 제35호, 1982> 

"우리는 일반적으로 퇴계의 학문에서 가장 현저한 특징은 주희의 신유학을 충실하게 조선에 전파한 데 있다고 말하며, 실제로 퇴계는 한국의 주자라는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필자가 다른 곳에서 밝힌 바와 같이, 퇴계는 단지 주자학의 전파자로만 규정짓는다는 것은 크나큰 오류이다. 확실히, 퇴계는 스스로가 유학의 길을 이해하는 데 주희에게 얻은 것이 많다. 시간이 가면서, 퇴계는 영감의 원천이며 학문적 논쟁의 중재자인 주희에 비추어 자신을 검증하곤 했다. 퇴계에게 있어서 주희는 유학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런데, 주희의 글을 빠짐없이 모은 문집은 여러 단계를 거쳐 퇴계의 말년에야 입수되었기 때문에 그는 이 南宋의 大家의 글을 초보자가 아니라 이미 매우 성숙된 식견을 가진 학자로서 접근해 갔다. 그는 주희의 정통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한 번도 맹목적인 믿음에 "동조(socialized)"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주자 사상의 모든 철학적 정수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대가인 주자에 대한 그의 평가는 수동적 수용이 아닌 비판적 분석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그가 그 스스로 정리한 생각들이 주희에 대해서도 확인된다는 것을 주희의 글에서 알아내었다."
<뚜 웨이밍, "이퇴계의 知性的 自己定義",(퇴계탄신 5백주년 기념 제17차 퇴계학 국제학술회의 논문집, 2001), 78쪽> 

(3) 步近智(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 퇴계는 주희철학에 수정을 가하고 발전시켰다

“天道를 범주로 하는 理氣觀에 대하여 퇴계선생은 주자학 체계 내의 내재적 모순과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점들(예컨대 理氣動靜과 理生氣 등의 문제)로 인하여 明代 초기 주자학이 분화되기에 이른 이론을 교훈삼고, 주자가 이른바 <理의 無情意, 無造作>, <태극은 理요, 동정은 氣이다> 라는 것, <理는 단지 氣을 타고서야 動靜한다>는 理氣動靜說에 대하여 수정을 가하고 발전시켰다.
더욱이 값진 것은 퇴계가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이다. ‘태극에 동정이 있다는 것은 태극이 스스로 동정하는 것이요, 천명의 유행이란 천명이 스스로 유행하는 것이다. 어찌 다시 시키는 자가 있겠는가’라는 관점이다. 이는 운동이란 사물 자체의 속성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물 이전에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추진력을 따로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동방철학의 우주체계 중 天道觀에 있어서 뛰어난 이론적 기여라고 여겨진다.”
<步近智,“이퇴계의 天人之學”, 퇴계학보 제69집, 1991년> 

(4) 찰스 푸(미국 템플대 교수) - 퇴계학은 양명학과 주자학을 종합한 웅대하고 독창적인 철학이다

“퇴계의 사단칠정설은, 왕양명(1472~1528)의 心卽理說(보다 고차원적인 관점을 구성함)과 주자의 性卽理說(보다 저차원적인 관점을 구성함)을 종합한 웅대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퇴계의 학설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의 유학자들과 사상가들에게 아주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극동 지역에 있어서 신유학 사상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하고 독창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퇴계는, 스스로가 주자학의 충실한 계승자에 불과하다고 오해를 했던 것 같다. 자기 오해와는 반대로, 그의 신유학 사상은 본질적으로 ‘전체를 투시하는 중층적 원근법’의 구조를 지니고서, 맹자에서 육왕학에 이른 실존적 본체론의 道, 정주학파의 理氣 형이상학의 道, 그리고 전기 유가의 종교적 초월성의 道, 이 세가지 道를 포함하는 웅대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퇴계학 연구에 종사하는 현대의 유학자 혹은 사상가인 우리들에게는, 퇴계의 심원한 철학적 통찰을 재발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유학의 道의 현대적 재건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이러한 새로운 과제를 위해, 나는 가까운 장래에 별도의 논문을 제출할 예정이다.”
<찰스 푸, “주자학 계승자로서의 퇴계철학의 독창성”, 퇴계학보 제49호, 1986, 101쪽, 113~114쪽>  

(5) 周月琴(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 퇴계가 理에 능동성을 부여한 것은 주희 철학에 대한 발전이자 변형이다. ...퇴계는 주자학의 양대 사조 가운데 심학화 사조의 최후 이론적 완성자이자 종결자인 것이다

"철학적 측면에서 퇴계심학과 주자리학의 차이점은 퇴계가 도덕적 인격의 추구에 목적이 있었다면 주자는 리의 본체론적 확립에 그 목적이 있었다. 학술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주자학이 퇴계의 철학으로 전이된 것을 본다면 이를 세가지 의의로 묶어낼 수 있다. 첫째는 도덕화이고, 둘째는 능동화이며, 셋째는 실천화이다. 퇴계는 주자 리학에만 멈추지 않았다. 퇴계는 주자의 본체론적 '理'로 도덕화된 해석을 하였다. 주희의 리는 計度와 造作 그리고 情意가 없는 리이다. 이는 퇴계가 자신의 철학을 세움에 난점으로 자리하였다. 이에 그는 리가 현실화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하였는데, 그 방법이 바로 리에 능동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러하면 리는 도덕적으로 실천화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사단칠정'에 대한 논쟁도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주희 철학에 대한 발전이자 변형이다.
퇴계 철학을 거시적인 측면에서 알 수 있는 방법은 퇴계심학과 양명심학의 차이점을 밝히는 일이다. 퇴계 심학과 양명 심학은 주자학에 대한 심학화라는 동질성도 있지만, 하나는 중국 주자학의 종결이고, 하나는 조선 주자학의 종결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더더군다나 양명심학은 도덕에 대한 깨달음을 위주로 하는 반면, 퇴계심학은 主敬를 통한 도덕의 실천에 목적이 있었다. 양명심학은 양명이후 狂禪으로 흐르기 시작하였다. 퇴계는 양명학의 이런 단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양명학을 극도로 배척하였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한 비교 분석은 주자학에 대한 퇴계의 지위를 명확하게 규정해 준다. 즉 퇴계는 주자학의 양대 사조 가운데 심학화 사조의 최후 이론적 완성자이자 종결자인 것이다."
<주월금, 『心經附註』가 퇴계심학 형성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계명대 박사 논문, 2000), 221∼222쪽>

(6) 楊憲邦(중국 인민대학 교수) - 주희를 중국 고대유학의 집대성자라고 한다면 이퇴계는 宋元明 주자학의 집대성자이다. 

"이퇴계는 중국의 程朱理學이 날로 쇠퇴해지고 陸王心學이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