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견- 국내 학자들의 견해는 설득력이 있는가?>

퇴계의 독창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학자들의 주장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송시열의 경우에는 단지 퇴계의 주장이 주자의 그것과 "다르다"는 주장만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말해 주어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주장으로 성립될 것처럼 보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완재 교수의 주장도 단지 주장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단지 퇴계의 철학은 "퇴계의 주체적인 사색과 경험을 통한 재구성"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인용된 구절에서만 보자면 이런 주장을 믿을 만한 근거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찬석 교수의 주장도 단지 "다르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홍원식 교수의 주장도 단지 퇴계가 주자학의 정통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하고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논거가 이상하군요. 그 논거의 하나가 율곡이 주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기에 독창성이 적을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독창성이 많을수록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요?

이들의 주장들은 이퇴계의 독창성을 보여주기에는 아주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 윤사순 교수와 유정동 교수는 리(理)의 능동성에 대한 퇴계의 주장에서 그 독창성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또 김용옥 교수도 이 점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이상익 교수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인용된 그의 글은 마치 주자와의 차이를 보여주는 퇴계의 주장, 그것만으로 퇴계의 독창성이 있는 듯이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문제는 비록 퇴계의 주장이 주자의 그것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다른 주장이 철학적, 혹은 성리학적 맥락 속에서, 나아가 현실적 문맥 속에서 어떤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밝혀야만 비로소 퇴계의 독창성이 지니는 본래적 의미가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최중석 교수의 첫 인용문에도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차이로부터 윤사순 교수는 이상주의(理想主義)를 도출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주의가 김기현 교수에게서는 '범도덕주의의 완성'이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최중석 교수의 두 번째 인용문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이상주의가 바로 현실적 사유로부터, 즉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단순한 공리공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이상적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공리공론이 아니라고 쉽게 주장할 수는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어떤 이상적 주장을 공리공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그 주장의 현실적 실현 가능성이겠지요. 

이 점에서 한형조 교수의 주장은 아주 대담해 보입니다. 리(理)는 바로 "인간 내부에 생생한 현실로 내 가슴에 살아 있는 힘이라고 증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내 가슴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힘이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과연 가능할까요? 

이상호 교수의 인용문을 보자면 오히려 내재성 보다는 리(理)의 초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해영 교수는 리(理)의 내재성, 즉 그것은 "실천의 능동적 주체"라고 말하고 있군요. 도대체 누구의 의견이 더욱 올바른 것인가요? 

어떻게 그것이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 가슴에서 살아있는 내재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주장이 홍원식 교수에게는 '철저한 일원론'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철저한 일원론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아마도 이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만 비로소 퇴계 철학의 독창성이 단지 주자와 주장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답변>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비평에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님의 지적처럼 퇴계의 독창성(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흡한 수준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독창성이라는 주제하에 여러 견해들을 소개한 것은 일천한 우리 동양철학 내지 퇴계학 연구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단지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퇴계학의 독창성 문제는 일부 퇴계학 연구자 사이에서만 거론되고 있을 뿐 우리 시대 다수 사람들의 퇴계에 대한 인식은 제가 앞에서 언급한 다카하시 도오루 같은 일제식민학자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 의하면 퇴계는 "사상의 종속성", "지적 사대주의"의 대표적인 표상이라는 것이지요.
전문 연구자 중에서도 퇴계의 "모방지향성"을 거론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글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음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퇴계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1997) 라는 책 속의 한 대목입니다.(145~146쪽)
이 글의 필자(최진덕 교수)는 여기서 "퇴계철학은 주희철학의 <철저한 모방>을 지향하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퇴계는 늘 주자를 배우고 모방하려 했던 만큼 우리가 퇴계를 칭송하려면 주자학과 퇴계학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자연도덕주의에서 유래하는 정적주의가 본체론과 공부론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자학과 퇴계학은 전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만약 주자학과 퇴계학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이같은 지적은 퇴계학에 퇴계 자신이 부끄러워 할만한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비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퇴계는 스스로 독창적이고자 한 적이 한번도 없다. 퇴계학은 주자학을 되풀이하고자 애쓰는 데서 성립한다. 주자학과 아무런 차이도 없는 주자학의 정확한 반복, 이것은 실로 自得을 강조하던 율곡까지 포함해서 모든 주자학도들의 공통적인 꿈이었다. 
조선조 性理學의 역사는 주자로부터 벗어나 주자의 한계를 극복해가려고 노력하는 독창적 사유의 역사가 아니라 그런 독창적 사유를 말살하고 주자라고 하는 원칙으로 되돌아가고자하는 모방의지의 반복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퇴계학의 꿈은 퇴계라고 하는 한 개성적 인간이 증발되어버리고 그 자리에 주자가 대신 들어서는 바로 그 지점을 지향하고 있다.
독창성을 귀하게 여기는 우리 시대의 학문 이념과는 정반대로 그같은 꿈의 실현이야말로 주자학도들에겐 최고의 학문 이념이었다.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흔히 간과되고 있는 이 점은 퇴계학을 위시한 조선조 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주자학과 구별되는 퇴계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퇴계의 저 유명한 理發說과 같은 것도 주자의 학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퇴계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주자가 흔히 '性發爲情'이라고 할 때의 '性發'은 理發과 다르지 않다. 또 <태극도설>에서 '太極動而生陽'이라 할 때의 '太極動'도 理發과 다르지 않다."

어쨌든 님의 지적은 퇴계의 독창성을 논의하는 사람은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라는 점에서 유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이 지적하신 바를 정리하면 대체로,
1) "다르다"는 주장만으로 독창성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2) 일부 학자들의 독창성 주장은 선언적 성격에 불과하다.
3) 주희와는 다른 퇴계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고 하더라도(예컨대 理發說), 그 차이가 철학적, 그리고 현실적 문맥 속에서의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4) 퇴계의 說을 이상주의의 표현으로 보더라도 그 주장의 현실적 실현 가능성에서 문제가 있다.
5) 기타 설득력있는 논거가 부족하다.

그런데 제가 앞의 글에서 소개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는 단행본 내지 논문 중의 한부분을 옮긴 것에 불과한 것이고, 전체 내용과 맥락을 검토하지 않는한 님의 지적의 구체적 타당성 여부는 유보하고 싶습니다.
다만 첫번째 "다르다"고 한 주장을 제가 독창성 범주에 포함시킨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보충 의견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르다"는 것 자체가 독창성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님의 지적은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독창성을 논의하는 전제로서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워낙에 일제식민사관 이래 퇴계의 모방 지향을 지적하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단 "주희와는 다른 바가 있다"는 주장 자체도 의미있다고 생각해서 포괄적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한편 제가 "퇴계의 說이 주희와는 다른 바가 있다"고 한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견해를 특별히 소개한 것은...
사실 우암은 긍정적인 맥락에서 그러한 의견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암을 비롯한 노론 계열은 자신들의 주자 해석이 정통이라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암은 말하기를 퇴계의 理發說이 "주자어류"에서 크게 힘을 얻은 것으로 보이지만, 주자서 전체를 교구해보니 기록자의 잘못이나 일시적인 발언 같으며, 주자의 정론이 아니라고 근거를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곡학파의 또다른 쟁쟁한 이론가 남당 한원진(1682~1751) 역시 주희의 정론을 엄밀하게 추적한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에서 "사단을 理之發"이라고 한 것은 주희의 아언(雅言)으로서 정론이 아니고 "주자어류" 기록자의 오기라고 단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皆與先生平日所雅言者不同, 可見全段是誤錄). 아마도 이들이 주자의 정론을 치열하게 탐구한 것은 주자학이 치국의 원리였던 당시 환경에서 주자학의 정맥을 이었다는 것은 그대로 현실 사회와 정치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쨌든 이러한 우암이나 남당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