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실재로 지금에 와서 ''''공자가 죽어야...''''같은 서적이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킨 건 유교진영이 고루함에 사로잡혀 있고 유교의 대동주의자들이 승자가 아니어서 그럴런지요...."


<답변>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와 같은 터무니 없는 비판이 합리화될 수는 없습니다.
비판 행위는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기엔 더없이 좋은 수단이지만 그와 같은 성찰없는 비판은 "어리석은 자기 부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조선 유교를 왜곡 오용하는 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또 그처럼 조선시대 우리 역사를 내동댕이처버린다면 좋아할 자들이 따로 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입니다.
과거에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었지만 앞으로는 신중화제국주의자들입니다.
요즈음 중국놈들의 고구려사 장악 음모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만, 사실은 고구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 중인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연구기관인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지난해(2002녀) 펴낸‘고대중국고구려역사’의 속편 서문에서 그들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중국에 복속돼 있었지만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민족의식이 깊어졌다." 

그러니까 그들은 조선시대마저도 그들에게 복속된 시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조선시대 역사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내팽개치면 그들은 "이거 웬 떡이냐"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당당해지고자 한다면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인문학적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조선 유교가 중국의 유학과는 그 흐름을 달리 하는 만큼 독자성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21세기 유학의 제3의 물결을 우리가 선도해야 합니다. (신유학 제2의 물결은 중국 송나라 때 불교-도교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짐, 신유학 제3의 물결은 서양의 지적 성과를 유학이 어떻게 소화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임))
우리가 경제력으로 승부할 겁니까? 군사력으로 행세하겠습니까?
우리는 사상으로 동아시아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우리에겐 충분히 그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학이 역사상 혁명적 실천 기능을 담당한 예는 조선시대 밖에 없습니다.
요즘 도올 선생에 의해 한창 부각되고 있는 삼봉 정도전의 유학정신과 16세기 정암 조광조의 유학정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중국이 유학의 본고장이지만 실천적 측면에 있어서는 결코 조선에 미치지 못합니다. 중국 유학사에는 기라성같은 이론가들이 있어도 삼봉과 정암과 같은 인물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사회주의 이론은 독일의 마르크스가 체계화하였지만 정작 혁명은 러시아의 레닌에 의해서 실천된 것처럼 말이지요. 
조선은 멸망했다고 합니다만 그건 조선이라는 정치체제가 멸망한 것이지 조선의 정신이 멸망한 것은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의 가슴 속에서라도 그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조선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지적할 것은...
조선 유교의 부정적인 측면은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조선시대 자체를 싸잡아 매도해버린다면...아주 중요한 "경험과 예지의 보고"를 상실해버리는 것이 됩니다. 
이열치열이란 말처럼 과거(어두운 유산)는 과거를 통해서(과거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극복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유교의 말폐적 측면은 유교 바깥에서 질타하기 보다는 오히려 유교를 정면에서 응시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6세기의 유학정신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2004년 1월 조사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