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시대의 성균관과 오늘의 서울대, 그리고 포항공대


앞의 글, "퇴계와 과학- 포항공대 스토리"에서 제가 퇴계 시대의 성균관에 빗대어서 오늘의 서울대의 문제점을 비판한 데 대해 어느 논객분이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균관 자체가 1차 과거를 통과하고 그 다음을 준비하는 기관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과거가 중심일 수 밖에 없지요. 오늘의 서울대는 교육 상으로는 고시와 아무 관계없고 
사실 교수들은 학생들이 고시 준비하는 것 싫어하지요. 사회가 돈과 권력만을 대우하고 
자기가 돈과 권력이 없으면 지름길이 고시니까 그걸 준비할 뿐. 경우가 달라보이는군요. 
더불어 포항공대가 생길 때만 해도 그렇게 고시열풍이 불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당시 서울대의 문제는 형편없는 연구지원과 문교부의 간섭 같은 것들이었지요. 
문교부가 박태준처럼 돈도 주고 힘도 줄테니 서울대를 제대로 만들어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이유였지 세속적 가치관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님의 말씀처럼 조선시대 성균관과 오늘의 서울대학을 구체적인 면에서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무리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이끌어갈 최고의 예비 엘리트들이 집결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엘리트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미래도 달라진다 할 것입니다. 
퇴계도 성균관 대사성 시절(1552년) "학생들에게 주는 특별 담화문"(諭四學師生文)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학교는 풍속과 교화의 본원이며, 모범을 세우는 곳이다. 선비는 예의(禮義)의 주인이며, 원기(元氣)가 깃들인 곳이다. 국가에서 학교를 설립하여 선비를 양성하는 것은 뜻이 매우 높다. ..."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퇴계 당시의 성균관이나 오늘의 서울대학이나 미래를 열어갈 엘리트의 산실로서 제 기능을 못해왔던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할 것입니다. 

퇴계는 23세 때, 33세 때 두차례에 걸쳐 성균관 유학을 하였고, 52세 때는 성균관 대사성까지 지냈기 때문에 성균관의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퇴계 33세 년보를 보면 퇴계가 경험했던 성균관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 선비의 기풍이 부박하여 선생의 행동거지가 법도가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곤 하였으나 오직 마음을 허락하여 상종하는 사람은 하서 김인후 한사람 뿐이었다." 
참고로 여기서 하서 김인후(1509~1560; 전남 장성출신)는 동아일보 사주들의 선조로써 인촌 김성수의 13대 조부가 됩니다. 퇴계보다 9살 연하인데 성균관에서 뜻이 통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성균관 대사성 때 퇴계는 "학생들에게 주는 특별 담화문"(諭四學師生文)까지 내려 "오늘날의 학교를 살펴보건대, 사장師長이나 학생(士子)된 사람이나 서로 그 도리를 잃었다"고 교학의 타락상을 개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서울대의 경우 역시 "서울대 폐교론"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을 정도로 엘리트의 산실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송나라 때 범중엄(范仲淹)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비는 모름지기 천하의 근심거리가 있을 때에는 가장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는 가장 나중에 즐거워 해야 한다"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그런데 우리의 서울대학은 나라의 근심거리가 있을 때에는 가장 나중에 근심하고 나라의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는 제일 먼저 재미보려는 인간들을 양성하는 곳 같다는 말이지요. 
서울대학은 국립입니다. 
그러한 집단에게 국가가 "국립"이라는 보증까지 해줄 이유가 뭐가 있느냐 이런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서울대학의 한심한 몰골에 대해 교육부의 간섭 기타 제도적 문제, 사회의 분위기를 탓합니다만, 글쎄요...변명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애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또 인간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서울대인들에겐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패기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나 기타 기득권에 연연해하는 구차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도가 잘못되었다면 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도 이전에 "인간"이 문제입니다. 
"서울대 개혁은 결국 서울대 스스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경향신문 1월 14일자 참조), 만약 서울대가 스스로 제 머리를 못깎는다면 서울대 밖에서라도 (서울대 출신 중에서) 김호길 박사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김호길 박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 포항공대 설립은 내 사랑하는 모교 서울대학에 참신한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이지요.(추념문집, 126쪽 참조) 

제가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대통령(김영삼)의 예를 들면서 서울대의 인문정신을 문제삼았던 것은 물론 김호길 박사의 사례와는 직접적으로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인문학계에도 김호길 박사와 같은 혁신적인 인물이 필요하다는 데서 같은 맥락에 있다고 저는 보았던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과 같은 부실한 철학도를 배출해낸 데 대해 해방직후의 구차했던 인문적 상황에다 책임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 연구 환경이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진 오늘날이라고 해서 서울대의 인문정신이 빛나는 도약을 이루었는가요?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위 "인문학의 위기" 상황이라든가, 서구일변도의 지성의 편식- 인문학의 지적 식민지 상황-에 서울대인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서울대 철학과 교수진을 보니 총 17명 중에 동양철학(한국철학포함) 전공자들은 기껏 4명에 불과하더군요. 철학의 실천성을 강조하는 동양철학의 소외는 상아탑 속의 무기력한 인문정신을 낳았다고 저는 봅니다.그나마 지난해 서울대에서 이남영교수를 중심으로 "남명학연구회"가 출범한 게 다행이라 해야겠지요. 적어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이라면 한국철학-동양철학-서양철학의 연구진 비율은 각각각 1/3 수준으로 조화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연구진도 대폭 증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뿐만이 아닙니다. 최고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법대는 또 어떻습니까? 
생각컨대 서울대학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은 역사적 정통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이 그 뿌리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일본 나고야 대학의 유마코시 토오루(馬越徹) 교수가 쓴 "한국 근대대학의 성립과 전개"(교육과학사,2001)라는 책에 보면 적나라하게 나와 있습니다. 아예 서울법대는 자신들의 역사가 백년이나 된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서울법대백년사자료집",서울법대동창회편,1987 참조). 아니, 서울대의 역사가 이제 50여년인데 서울법대는 백년이라니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그들은 스스로 경성제국대학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정신문화적 바탕이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울미대의 김민수 교수가 아직도 복직을 못하고 있습니다만 서울미대의 경우는 서울법대의 친일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서울법대백년사 편집위원장 전00박사-전설의 전혜린의 아버지-는 일제경시 출신으로 지난해 발표된 친일파 708인에 포함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래도 서울미대에는 김민수 교수와 같은 양심적인 학자가 있습니다. 서울법대에 김민수 교수같은 용기있는 법학도가 있습니까? 
서울법대출신들은 우리시대 최고의 엘리트들이라고 엄청 광을 팔지만 사실 우리의 법률문화를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독재정권유지에 일등공신이었던 것 하며, 끊임없이 이어져온 법조비리의 주역들은 줄줄이 서울법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법조개혁의 최대의 장애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인들 국회의원들을 비판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국회의원 중에서 서울법대 출신만 50명이 넘습니다(국회수첩 참조). 그들만이라도 제대로 의식이 박혀 있다면 정치가 이정도로 엉망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고시공부할 때 형사소송법을 읽으면서 고문해서 얻은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검사에겐 수사상의 인권보호 의무가 있다는 것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학생회장을 지낸 서울법대인은 자신이 앞장서서 고문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도 국회의원이 되고 한 정당의 중책을 맡기도 했다고 하니... 그러면서도 고졸출신의 정치인에게는 자신들의 학벌을 과시한다는 말이지요. 헛참 이게 제대로 된 대학입니까? 

저의 이야기가 서울대인들 입장에서는 가혹한지 몰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서울대는 정신적 차원에서부터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 의견입니다만 서울대가 살아나려면 서울법대같은 오만한 학부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그 여력을 기초과학이나 인문학에 대거 투자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명실공히" 최고의 그리고 사랑받는 국립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길이라고 봅니다. 


이상 조사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