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퇴계가 성균관 대사성 시절(1552년, 퇴계 52세) 학생들에게 한 특별 담화문의 내용입니다.
- 정순목, "퇴계평전"(지식산업사,1987)의 70~73쪽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주는 특별 담화문(諭四學師生文)


학교는 풍속과 교화의 본원이며, 모범을 세우는 곳이다. 선비는 예의(禮義)의 주인이며, 원기(元氣)가 깃들인 곳이다. 국가에서 학교를 설립하여 선비를 양성하는 것은 뜻이 매우 높다. 선비가 입학하여 자기를 수양하는 데 어찌 천하고 더러운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마땅히 스승은 엄하고 제자는 공경하여 각각 그 도리를 다할 것이다. 엄하다는 것은 서로 사납게 하는 것이 아니고, 공경한다는 것은 굽힘을 받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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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학교를 살펴보건대, 사장(師長)이나, 학생(士子)된 사람이나 서로 그 도리를 잃었다. 학교의 규칙이 강명(講明)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법령까지 크게 무너져서 엄하지 못하고, 공경하지 못함에도 오히려 서로 병폐를 잡으니, 국학(國學)에 있어서도 이런 일이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사학(四學)이 더욱 심하다. 내가 들으니 사학의 유생들이 <스승 보기를 길가는 사람 보듯 하고, 학교를 보기를 주막집 보듯하여, 평상시에 예복을 갖춘 자가 열에 두세 사람도 없고.... 스승이 들어오면 수업을 받고 가르침을 청하기는 고사하고, 읍(揖)하는 예를 행하는 것까지 꺼리며 부끄럽게 여겨, 서재(書齋) 안에 반듯이 누워서 흘겨보고 나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서재 안에 있으면서 글을 읽는 사람이라든지, 혹은 출입하는 수행원을써 식당에 참여한 사람은 비록 정원수를 초과하더라도 마땅히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데, 하물며 정수 안의 인원에 있어서랴, 선비라고 이름하면서 실상은 아니니, 절취(竊吹)하는 무뢰배(無賴輩)들이 불행히 그 속에 섞여 있다면, 학관(學官)된 이가 그 허실을 분별하여 먹는 수효를 정하려는 것은 또한 그 직책의 당연한 일이거늘, 선비들이 함부로 욕하여 말하기를, <국법에 날마다 몇 사람을 공궤(供饋)하게 되어 있기에 이렇게 삭감하는가?> 하며, 관원이 보지 않는 날에는 먹는 수효가 갑절이 되어서 한 사람이 붓을 잡으면 수십명분을 연서(連署)하므로 그 외람(猥濫)된 형상이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도의를 배우는 선비로서 사양하고 받는 분수를 아는자가 차마 이럴 수 있겠는가. ... 스승은 구설(口舌)에 시달려서 그 제어를 달게 받아, 능각(菱角)이 변하여 계두(鷄頭)가 되어서 위아래가 서로 속이니 함께 허물이 되고 만다. 슬프다. 국가에서 선비를 기르는 뜻이 어떠한데 선비들이 자기를 스스로 비천함이 이와 같은가!

내가 지난해에 시골에서 들으니, 성상께서 학궁(學宮)을 시찰하시는 성전(盛典)을 거행하여 대가(大駕)가 친림하였는데, 유새들이 절하고 꿇어앉는 예절도 모르고, 대가가 환궁할 때에는 지송(祗送)을 기다리지 않고 흩어져 갔다 하므로, 홀로 탄식하기를,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였더니, 오늘날 보니 또한 괴이할 것도 없다. 평일에 스승을 공경할 줄 모르는 마음이 곧 뒷날에 임금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평상시에 조금이라도 스승을 능멸하는 마음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설혹 그런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고칠 줄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말이 여기에 이르니 가슴이 막힘을 금치 못하겠다. 그렇지마는 유생들이 모두 여러 사람 가운데에서 선거되어 양현(養賢)의 솥에서 먹고 있으니, 그 가운데에 어찌 부끄러움을 알고 예를 좋아하며 자중하는 사람이 없으리요마는 모두가 타락하여 이 지경이 된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 이렇게 되게 한 것은 실상은 스승이 직책을 지키지 못한 탓이다.

지금 사학의 관원들은 그 처신하는 것이 매우 졸렬하여 부지런히 공무수행[任進]을 하지 않으므로 학사(學舍)가 항상 비어서 원집[院宇]과 다름이 없고, 간혹 공무수행을 하더라도 묵은 버릇 그대로 그럭저럭 지내서, 읍례도 행하지 않고, 교훈으로 일을 삼지도 않아서, 모든 처사가 도리를 잃은 것이 많다. 그러므로 새로 배우는 소년들이 의리에 깊지 못하고 스승과 제자[師生]의 분수에 어두워 망령되게 경모(輕侮)하는 마음이 생겨 안일한 데 익숙하게 되었다. 이것이 어찌 제생만의 허물이겠는가?

내가 병들고 무상한 사람으로서 스승의 자리에 잘못 처하여 회피할 길이 없으나, 하루 동안 이 자리에 있으면 마땅히 하루의 책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듣고 보는 바에 근심과 한탄을 이기지 못하여 마음이 격(激)하게 되어 자연히 말이 번거로와지니, 지금부터라도 스승은 공(公)-사(私)의 사고 이외에는 반드시 매일 일제히 사진하고, 사진하면 반드시 예를 행하며, 예가 끝나면 강의를 시작하여 날마다 상례(常禮)로 삼을 것이요, 유생들도 반드시 각각 예복을 갖추어 일제히 나와서 읍(揖)을 행하고 글을 읽어서 기르침을 청하라. 일용 음식도 예의 속에 주선하지 않음이 없어서, 오직 힘써 경계하고 격려하여 묵은 습관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들아면 부형을 섬기는 마음을 미루어서, 나가면 어른과 웃사람을 섬기는 예절에 이행(移行)하며, 안으로는 충(忠)과 신(信)을 주장하고, 밖으로는 겸양하고 공손하며 온순하고 공경하며 선(善)을 좋아하고 의(義)를 좋아하는 뜻이 자연히 드러나서, 품격이 독실하고 순후하면 나쁜 폐단이 일신하여질 것이다. <<시전(詩傳)>>에 '청아(菁莪)', '역박(域樸)'이라 하였다. 문교를 숭상하고 교화를 일으키며, 학교를 설립하고 선비를 양성하는 뜻에 부합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만일 여러 사람을 해치고 예법을 좇지 않고, 허물을 듣고도 행패를 그치지 않는다면 학령(學令)의 회초리와 국법[王制]의 대이(對移; 귀양보냄)를 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승이 만일 고루한 것을 그대로 인습하고, 묵은 것을 지켜 고칠 길을 생각하지 않으며, 삼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국가에는 '출척(黜陟)'의 법이 있으니, 요장(僚長; 유생들의 장)이 한 때라도 감히 사사로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각 노력하여 소홀히 하지 말 것이다.